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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Jul 14. 2021

조금은 특별한 뉴욕 일식당 알바 이야기

사장님, 잘 계신가요?

뉴욕? 뉴욕!


뉴욕에 가고 싶었다. 미국 시골에만 있었던 나에게 뉴욕시티는 선망의 도시였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지쳐있을 때쯤 누군가가 뉴욕으로 차를 가지고 간다고 했다. 한 푼이 아쉽던 나에게는 아주 꿀 같은 기회였다. 급히 짐을 싸서 맛있는 밥을 사준 후 뉴욕 길에 동행했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여느 누구에게나 그렇듯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모든 것이 다 모여있는 로망의 대도시이기에. 5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가는 내내 설렘으로 신이 났다. 뉴욕에 가까워질 때쯤 '조지 워싱턴 브릿지'를 건너는데만 2시간이 걸렸다. 역시 뉴욕은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구나. 마지막까지 애타게 만드는구나. 그래도 난 널 보러 가리라. 겨우 도착한 후, 이미 뉴욕에 살던 친구와 반갑게 조우했다. 잠시 뉴요커가 된 나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넘쳐나는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볼거리가 가득했고, 역사적인 건축물부터 전 세계 금융의 메카인 월스트리트, 소호까지 24시간 동안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에 내가 속해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뉴욕 땅을 밟다니  @Joshua Earle, Unsplash



그래, 결심했어! 방학 동안 뉴요커가 되는 거야!


어차피 방학기간도 길고 해서 좀 더 머무르자 생각이 들어 방을 빌렸다. 기존 월세를 내고 있던 터라 방을 구하니 월세를 두 번 내는 셈이었다. 그만큼 나의 용돈도 금세 고갈되었다.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달라 연락하기엔 내 손이 전화기로 올라가지 않았다. 친구가 단기 알바를 구해보라 추천했다. '그래! 알바도 하면서 방학 동안 뉴욕에서 살아보자.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야!' 한인타운으로 가서 알바를 알아보니 운 좋게도 자리가 있어서 바로 일하게 되었다. 짧게 일한다고 하면 안 뽑아 줄 것 같아 약간 소금을 쳐서 두세 달 정도는 일할 수 있다고 했다. 딜이 성사가 되었다. 미국의 일식당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한인이 운영다. 아무래도 일본을 좋아하는 미국인의 성향으로 한식당보다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롤과 스시의 재료, 사케를 종류별로 달달 외우고 서빙 일을 시작했다. 3개월이라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정말 다이내믹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뉴욕의 야경은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다 @peterlaster, Unsplash



초개인주의 미국인


'개개인의 요구에 맞춘(customized)'라는 단어는 아마 미국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스시를 서빙할 때 기본으로 미소장국이 나간다. 그때 장국에 뭐가 들어가느냐? 미역을 빼 달라, 두부는 작게 썰어달라로 부터 시작해 드래건 롤에는 장어와 아보카도는 많이 주되 오이는 빼고 간장도 따로 소스 종지에 담아 달라, 크런치롤에 튀김 쉬림프는 반으로 자르지 말고 따로 접시에 담아주고 소스도 각각 따로 달라 등 주문자의 취향이 확고한 미국인들이다. 주문을 받는데만 5분이 넘게 걸린다. 햄버거를 시키면 그냥 와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양파는 빼고 소스는 패티 위에 뿌려주고 빵은 겉만 굽고, 고기는 바싹 익히고를 요구하는 참말로 까다로운 사람들이다. 커피 주문 하나에도 바닐라라테 그란데로 주문할 건데 벤티 컵에 뜨겁지 않게 두 개 겹쳐서 주고 시럽은 슈가프리로 우유는 non-fat으로 하는 skinny로 주문한다. 초단위로 바쁜 뉴요커들이지만 먹는 거에 대해서는 본인 취향이 확고하다.  

이 스벅 아바라 한잔도 다 같은 게 아니다 @zeraroid, Unsplash



레스토랑에 비가 왔다


점심때는 전쟁터처럼 바빴다. 점심시간을 잘 보내면 그날 하루는 별 탈 없이 보내는 거라는 말이 돌 정도로 정말 총알이 슝슝 날아갈 정도로 정신없는 시간이 런치타임이다. 스시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포장 주문이나 배달도 많이 하는데 어느 날은 비가 왔다. <It's raining>의 가수 비 말이다. 그러나 비가 오든 말든 우리는 다들 주문받고 서빙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비 주문을 누가 받았던 누가 스시롤을 전해줬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았다. 비가 있든 말든 우리는 그날의 점심시간이라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장으로 돌진하고 각개전투 후 상처를 충분히 입고 멘탈이 나간 후에야 서로를 돌볼 시간이 주어진다. 그때서야 아까 잠시 스쳐 지나갔던 비를 되짚는다. '아까 여기 온 손님 비 아녔어?', '네, 그랬던 거 같아요.', '아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 얼마 벌었지?'




저승사자 사장님


사장님은 매우 무서운 여자분이셨다. 소문으한때 32번가 한인타운에 몇 개의 점포를 가지고 호령하셨다 들었는데 지금은 다 망해서 하나 남은 게 이 일식당이었다. 그래서 심기가 불편하고 욕도 아주 찰지게 잘하셨다. 식당이다 보니 청결을 제일 중요시했는데, 청소했냐 확인해보면서 문 틈새를 손톱으로 긁어 확인하는 꼼꼼한 분이셨다. 손님이 없으면 쓸고 닦고 하는 게 일이었다. 이렇게 청소를 열심히 하는데도 먼지 나오면 억울했다. 여기저기 조용히 허연 얼굴을 하고 불시에 나타난다고 하여 소위 저승사자 사장님으로 불렸다. 어느 날, 한국 아주머니 두 분이 오셔서 큰소리가 났다. 사장 어딨냐며 카운터로 가더니, 내가 저번에도 왔는데 그때도 짜서 못 먹겠더니 오늘도 너무 짜서 못 먹겠다며 이걸 먹으라는 거냐며 삿대질에 고성을 질렀다. 손님이 많이 없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그때 사장님은 100불짜리를 꺼내 건네며 거듭 죄송하다고 계속 사과를 하셨다. 그럴수록 더 언성을 높였고, 결국 음식값도 계산하지 않고 다 먹은 후 100불까지 챙겨갔다. 그때 근엄한 저승사자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았다. 미국 와서 성공을 거두고 또 내리막길을 겨우 걸어가는데 하나 남은 가게를 지키기 위해서 저렇게까지 하시는구나. 성공한 사람은 이런 극한 상황을 다 겪고 저승사자가 된 거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3개월 동안의 뉴욕 생활은 나에게 많은 추억을 남겼다. 브라이언트 공원 앞에서 쉑쉑 버거를 맛있게 먹고, MOMA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마음껏 보고, 브루클린에서 3대 뉴욕 피자를 먹고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한 뒤 뉴욕 야경을 바라보며 브루클린 브릿지를 현지인처럼 걸어보고, 타임스퀘어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마음껏 보았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일식당의 사장님이다. 진상 고객 앞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며 내쫓을 수도 있었지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 자존심 센 분의 다른 모습 보다. 하나 남은 가게를 지키려는 책임감, 직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머리를 숙이며 남은 자존심을 다 구겨버렸던 그 용기, 혼자 울분을 삭여야만 했던 사장이라는 무게, 그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 느다. 벗어나고 싶은 상황을 당당히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자존심이 워낙 센 분이어서 분명 창피하셨겠지만 사장님은 우리를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굽히는 선택을 한 거다. 나는 그저 무섭기만 했던 그분의 작은 어깨가 떨리는 걸 보았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악플로 고통받는 업주를 보며 사장님이 떠올랐다. 그녀가 낸 용기는 나를 위한 것이었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나라면 저럴 수 있었을까? 사회생활을 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내 자존심을 꺾지 못할 것 같다. 저승사자 사장님은 과감히 검은 두루마기를 벗고 무릎을 꿇은 것이다.





진정한 어른의 모습


학교로 돌아간 후에 보이스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다. 저승사자다. 연락해라."짧고 무서운 메시지가 들려 다시 전화하지 못했다. 나는 아마 그때 저승사자가 무척이나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차마 다시 연락하지 못했다. 무사히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한 지 10여 년 지난 지금 그때 사장님의 전화를 받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전화를 받아 잘 지내고 있다고, 짧게 일하는데 받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다음에 뉴욕 가면 인사 꼭 드릴 테니 가게 더 많이 내셔서 번창하시라고, 왜 이 말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을까? 나이가 들수록 사회생활이라는 전쟁터를 겪을수록 고길동을 이해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제야 본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존심을 구겨버린 사장님의 그 굽힘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저승사자가 검은 두루마기를 벗고 숨겨둔 날개를 펼쳐 천사가 되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나도 그러한 어른이 되려 한다. 자존심을 내세워 한 순간을 모면하기보다는 나보다는 주변 사람을 위해서 잠시 자존심을 접어두고 나서서 해결하는 책임감 있는 어른 말이다. 저승사자 사장님은 나에게 본인의 역할과 의무를 중히 여겨 직원들을 위해 자존심을 잠시 굽혀 소중한 나머지지키려는 희생정신을 새겨 주었다.  

사실은 천사였던 저승사자 사장님! 나도 누군가에게 천사가 될 수 있을까? @thejoshhoward,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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