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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Nov 24. 2022

열받을 때 지름신을 찾아갑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는 개뿔. 무슨 원수를 사랑해? 원수는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이다. 고로 원수는 원수이고 진상일 뿐이다. 따라서 원수를 싫어하는 마음은 사랑으로 이어질 수가 없다.


이 원수로 말할 것 같으면 2022년 찌는듯한 여름날부터 나에게 다가왔다. 처음엔 '질문이 좀 많은 타입이고 꼼꼼한 성향인가 보다.'라 너그럽게 넘기려 했지만 이 진상은 더위 가시고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추위가 코끝 앞에 다가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 질문을 하고 빠르게 답변한 걸 남긴 기록만 해도 수십 통의 이메일이고, 전화는 물론 직접 찾아와서 행정처리가 느리다며 항의를 계속했다. 세상이 두쪽이 나더라도 자신이 필요한 것은 오늘까지 해내란 억지다.


부서 전체로 보면 이 일 하나는 그리 큰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데 필요치 않게 많은 에너지와 노동력을 낭비됐다. 행정절차를 설명해도 자기 유리 한대로만 기억하고 곧이곧대로 악용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인데 그 부분은 쏙 빼놓고 말이다. 해결해줘도 또 고쳐달라고 지속적으로 괴롭히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윗선에 얘기해 압박까지 하기 시작했다.

과대/과소평가의 오류: 어떤 일에는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또 다른 일에는 너무 작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일 수도 있고, 사건일 수도 있고, 때때로 나의 성취나 성공에 대한 자기 평가일 수 있다.



마음이 허기질 때


진상에게 시달리니 마음에 허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걸 먹는 걸로도 안 풀리고 누군가에게 실컷 욕을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 진상은 그다음 날이면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또다시 오기 때문이다. 이러려고 이 일을 시작했나 자괴감까지 들면서 퇴사 생각까지 들었다. 괴롭히는 사람을 어떻게 떼어낼 수 있지? 방법은 퇴사라 생각하니 허무하고 의욕이 떨어졌다.


허한 마음을 채워 넣으려 스마트폰으로 창을 계속 넘겨보니 '블랙프라이데이(블프)'라는 단어가 나를 유혹시켰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그 기회. 필요치 않았던 물건을 절호의 찬스로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며 클릭질을 하게 만들었다. 평소라면 사지 않았을 예쁜 쓰레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자기 합리화를 하며 말이다.

겨울이 오니 코트도 하나 장만, 건강하게 운동하려면 장비빨이니 필라테스복과 양말도 구입. 밖에서 사 먹으면 비싸고, 재료를 사서 먹으면 어차피 남기니깐 간편하게 먹는 밀키트, 겨울이면 트는 내 손을 예쁘게 꾸며야 하니깐 젤 네일 세트부터 겨울이라 몸이 건강해야 하니깐 영양제까지 모조리 클릭을 하며 결제하기 시작했다.


결제 후 까맣게 잊고 있던 택배들이 근무 시간에 하나둘씩 집으로 도착했다. 집에 계시던 엄마가 택배가 올 때마다 하나씩 알려주기 시작하셨다. 택배 사진과 함께 '택배 도착'이라는 카톡. 얼른 가서 뜯어볼 생각에 기쁘기만 했다. 쌓이고 쌓이는 택배 상자에 엄마도 지치기 시작했는지 사진 전송은 점차 사라지고, 채팅도 점차 짧아지기 시작했다.


1. (택배 사진) 택배 도착했다

2. (택배 사진, 흐릿함) 택배 왔다

3. 택배

4. 뭐 이리 많이 샀니? 다 먹는 거가?

5. ㅌㅂ



지름신과의 조우는 그리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 나는 마음의 허기를 쇼핑으로 채우고 있었다. 스트레스와 타인으로부터의 상처, 또 내면의 상처를 충동구매로 채우고 있었다. 지름신이 내려온 것이다. 확실하게 말하면 내가 지름신을 찾아간 것이다. 오스트리아 사회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가 주창한 '균형이론(Balance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늘 균형적 심리상태를 원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정신적 불균형 상태로 스스로에게 즉흥적인 보상을 내려야만 회복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관심도 없었던 명품가방을 산다거나 블랙프라이데이 할인이라는 광고에 혹해서 덜컥 주문하기도 한다. 사회적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의 성격을 갖게 되며 사회로부터 상처받아 떨어진 자존감을 되살리는데 쇼핑만큼 큰 효과를 내는 대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쇼핑중독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쌓여가는 카드값과 엄마의 잔소리, 그리고 이렇게 필요치도 않은 걸 사서 뭐하나 하는 자괴감. 쇼핑에 대한 욕구는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 때마침 저녁에 브런치 작가 줌 미팅이 있어 참여를 하며 담소를 나눴다. 수십만 원을 써가며 채워지지 않던 나의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되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해야


중독적인 소비행동은 그 순간만 무통 상태가 된다. 그 이후에는 오히려 더 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쇼핑으로 채워지는 행복은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쨌든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지독히 상처받고, 생각지도 못하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사소한 일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기도 한다.  

  

사람한테 데인 상처는 사람으로 치료해야 한다.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니라 나를 잘 이해하는, 또 나와 잘 맞는 다른 사람을 찾아 치유해야 한다. 내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지름신이 해결해 주지 못했다. 오히려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단시간 내에 신이 아닌 '사람'이 해결해 주었다.


앞으로도 나는 스트레스나 마음에 생채기가 날 때 지름신이 아닌 사람을 찾으려 한다.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하거나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곧 나를 떠난다. 그렇게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새 내 주변은 진상이나 지름신이 아닌 좋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짧은 인생 좋은 사람들로만 가득 채우기 @Javier Allegue Bar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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