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함께 짜장면을 먹어본 적 있나요?
내가 잠시 살았던 따뜻한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에 유학을 떠난 옛 회사동료가 있다. 신년인사 겸 오랜만에 안부를 물으면서 반가움에 이야기가 물꼬를 틀었다. 이제는 멀리 떠나 궁금하지 않을 회사 이야기, 다시 공부 시작해 어떠냐는 안부와 함께 해외살이의 고충에 대해 위로를 전하며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직장인이 바라던 퇴사를 한 후 다시 공부하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공부는 아직까진 재미있지만 한국음식 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 세계적으로 한류가 열풍인 요즘 한식에 대한 인기도 남다른데, 본인이 사는 곳은 LA에서 차로 3시간 정도의 거리기에 잘 가지도 못해 아쉽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친구들과 LA로 여행을 떠나 짜장면을 먹으니 너무나 맛있어서 눈물의 짜장면을 삼켰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맞다. 미국에선 한국 음식이 귀하지?
손 뻗으면 먹을 수 있었던 귀한 분식
잊고 있었다. 내가 살았던 미동부의 한 도시도 시골이었기에 한인마트나 한인식당은 귀했고, 또 가더라도 비싼 값을 내며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유학생이 매일 값비싼 한식을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 가면 널려있는 떡볶이, 순대, 튀김이 길거리 포차에서 한 접시에 3천 원(지금은 비싸도 4천 원 정도)에 손 뻗으면 먹을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한인식당에 가서 20불을 넘는 가격을 줘야 하고 팁도 별도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유학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게 바로 음식이었던 게 생각이 났다. 한국 가면 맛있는 거 많이 먹어야지 하면서 메뉴를 적어 놓기 일쑤였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게 바로 '의, 식, 주'가 아니겠는가? 잠시 살 거처가 마련되어 있고, 최소한의 옷이 갖춰지더라도 바로 삼시세끼 먹는 게 살아가는 데 중요함을 주식이 허술하니 의식주가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되었다.
신메뉴 개발자에게는 포상을 내려야
4년 정도 미국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음식에 대한 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0년 후 출장으로 그 도시를 다시 방문했을 때도 똑같은 레스토랑에 똑같은 메뉴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트렌드가 급변한다. 코로나로 배달음식 문화가 정착되었을 때도 한국인의 메뉴 개발은 멈추지 않았다. 얼얼하게 매운 마라탕 열풍이나 매운맛에 크림소스를 더한 로제떡볶이, 명란을 톡톡 터뜨리는 맛이 있는 명란파스타나 추운 겨울 철에만 먹을 수 있는 붕어빵과 호빵도 매해 새로운 메뉴가 나왔다.
내가 살던 미국의 한 소도시엔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이 있었다. 한국에서 흔히 싸고 맛있게 접할 수 있는 짜장면을 기대하면 안 됐었다. 훨씬 더 비싼 가격에 한입 먹고도 못 먹을 수준의 짜장면을 먹고 나서 친구와 후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길로 마트에서 춘장을 사고 야채를 곁들여 집으로 가서 짜장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요리를 이렇게 잘했던가? 결핍은 인간의 원동력이 되는 건가? 그때 먹었던 짜장면은 잊히질 않는다.
조금 떨어지면 그리워진다
조금 멀어지니 그곳이 참 그리워졌다. 지치는 도시 속의 일상을 벗어나 끝없는 지평선을 마주하는 바다로 향하지만, 아침마다 마주했던 그 유학시절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제야 미국의 리비에라라 불리는 그곳에 사는 그에게 영상을 보내달라고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애타게 사무친다.
가까이 있을 땐 그 고마움을 모른다. 그 당시에는 한국 가면 값싸고 맛있는 한식을 감사하며 먹어야지 했지만 한국살이가 익숙해진 요즘엔 더 맛있는 게 없냐며 투덜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안부를 물으며 내가 깨달은 것은 현재를 조금 불만스러워한다는 것이다. 하늘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숨 막히는 빌딩이 너무 많고 사람도 많다고 투덜대지만 사람이 없는 한적한 마을에서는 또 복잡한 도시 속의 인파를 그리워했다.
어쩌면 현재의 괴로운 마음에만 신경 썼지 삶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의미를 찾는 긍정적인 부분은 놓치고 있었던 건지 모른다. 이제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지금 누리는 것을 그리워했던 그 시절을 떠올려야겠다.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네.'라 노래 부르던 그 시절의 나는 이제 마음껏 짜장면을 먹고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