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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Jan 13. 2023

'나 하나쯤이야'라는 오산

대학 때 많은 봉사활동에 도전했다. 사실 누군가를 위한 봉사라기보다는 취업을 위한 봉사시간 채우기였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주거공간을 확보해 주는 국제 NGO단체가 시행하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이었다. 주거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있는 인류를 위한 전 세계적인 봉사활동이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조직인 가정이 건실해야 사회 전체가 건강하게 번영할 수 있다 믿으며 필수요소가 '집'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시작된 운동이다.


이런 깊은 뜻을 알지 못한 채 아무런 생각 없이 시작했던 봉사활동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장갑을 끼고 안전모를 착용한 후 안전교육을 듣는 것부터 시작한다. 길지 않은 시간 참여하는 봉사활동이었지만 안전을 위해 준비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나무판자를 나르는 것이었다. 보기보다 무서운 나무판자를 나르는 일로 체력은 금세 소진되었으며 나르는 도중 서툴러 모서리가 부스러기도 했다.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한 활동이었기에 철없던 그 시절의 나는 친구와 현장을 잠시 나와 몰래 쉬고 있었다. 그때 직원이 다가와 우리를 데리고 구조만 겨우 세워진 집안으로 들어가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지금 밟고 있는 이곳은 한 가족이 매일 아침에 만나 아침밥을 먹는 부엌이 될 거고, 가운데는 다섯 가족을 위한 커다란 식탁이 놓일 거라고. 저곳은 부모의 침실이며 옆방에는 미래 과학자가 되고 싶은 장남이, 그 옆방에는 예쁜 드레스를 만들고 또 입고 싶은 둘째 딸이. 그리고 작은 앞방에는 아직 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은 막내 유치원생 아이가 살게 될 거라는 전해줬다. 


너는 그냥 집을 짓는 걸 돕는 게 아냐. 한 가정의 행복과 번영을 돕고 있는 거라고 © I, Jmabel, Wikipedia


그들의 이름까지 모두 전해 들으며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바로 거실이었다. 이곳에선 가족들이 매일 저녁 다 같이 모이는 장소가 될 거라고. 하루를 잘 마친 서로를 위로하고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자리가 될 거라고. 지금 너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모른다고. 살 공간이 없어 흩어진 가족을 한 곳에 모이게 하고 그들의 미래에 일조를 하고 있는 거라고. 이 순간 너희들이 바깥에서 쉬던, 일을 하던 자유지만, 어쩌면 너희 대신 열심히 일할 다른 봉사자의 시간을 뺏고 있는 거라고.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 가족을 만나지도 않았던 나는 그들을 향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몰아쳤다. 누군가에겐 이렇게 소중한 일이 나에겐 사소하고 별일 아니라 생각했던 나와 친구가 참 못나보였다. 또 내가 아니더라도 이 집 짓기의 취지를 잘 아는 누군가가 와서 가족이 함께 모일 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었는데 그 기회를 뺏은 것 같아 미안하기까지 했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소중한 시간도 앗아간 거였다.


이후 봉사 점수만 따려했던 그때의 내가 참 부끄러웠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봉사활동도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어쩌면 나의 작은 노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일까? 무지함을 반성하는 의미로 그 이후에는 친구와 함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 있는 힘껏 열심히 일을 도왔다. 봉사활동 이후 2주간 어깨는 물론 등과 팔다리에 파스를 붙일 정도로 내 몸은 성치 않았으나 이는 나의 무지를 파스로라도 감추려는 마음이 더 컸다.


몇 개월이 지난 후 파스를 붙이지 않고도 괜찮아 질만큼 나의 근육통과 죄책감은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 이메일에는 나의 죄의식과 안일함, 땀과 노력, 그리고 근육통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완성된 다섯 가족의 집이 보였다. 그때야 느꼈다. '나 하나쯤 이래도 된다 빠지는 게 아니었구나.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구나.' 뒤늦게나마 작은 손길이라도 뻗어 도움이 돼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이 봉사활동의 정식명칭은 Habitat for Humanity다.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집이 있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1976년 미국에서 시작한 국제비영리단체로 가난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집'이라는 따뜻한 보금자리를 선사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가슴속에 새기지 않았던 나는 아마 이 집이 한 가족, 또는 인류를 구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눈앞에 보이는 나무판자 집이 아닌 그 너머를 보는 혜안을 가졌었다면 시간을 조금 덜 낭비했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인간을 위한 즉 인류를 향한 다짐이 들어있다. 한 생명을 위한 또는 그 생명을 품은 가족을 도와주는 것, 타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것, 세상을 바꿀 만큼 엄청난 것을 발견하진 못하지만 나의 소소한 선행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어쩌면 일상의 영웅이 되는 방법 아닐까?

일상의 영웅이 되는 방법은 나의 소소한 선행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 © javigab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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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에는 순차적으로 앞선 작가님이 지정한 문장을 포함하여 글을 이어가는 글쓰기 릴레이를 진행 중입니다. 
제가 지정한 문장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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