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는 하루다. 매일이 반복되는 비슷한 하루가 시작되었는데 오늘도 특별한 게 없다. 집에 돌아가는 길도 비슷하고 지루하기만 하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니 기진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자극과 활력이 필요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핸드폰만 뒤적이고 있다.
지겹도록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답답함을 벗어나려 여행을 가고, 물건을 사고, 집안을 꾸며보지만 기쁨도 스쳐 지나갈 뿐 막힌 곳은 쉬이 해갈되지 않는다. 해야만 하는 일들만 가득하고 정작 하고 싶은 일들은 저 멀리 어디론가 희미해져 간다. 행복을 찾아 발버둥 쳤는데 그럴수록 더 멀어져만 가는 기분이다. 딱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행복하지 않다. 그저 지루할 뿐이다.
지쳤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지쳤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 대사 중
그토록 여행을 부르짖거나 하염없이 인터넷 쇼핑을 하다 장바구니에 담아둔 물건을 구매하는 건 어쩌면 눈을 감고 떠도 변치 않는 일상을 해방하기 위함이 아닐까?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내 카드가 무적의 무한도 카드인 양 긁어대는 인터넷상에서는 VIP 고객이 될 수 있기에. 그렇게까지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채우기 위함이었을까?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나를 모르는 어딘가에 울부짖고 싶을 때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 자 한 자 적어가보자 시작한 글쓰기는 나를 점차 해방시켰다. 글을 쓸 때면 나는 그 누구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동물로 환생하기도 한다. 또 꿈꾸던 이상형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를 누비며 다닐 수도 있고, 염원만 해오던 일을 당장 할 수도 있다.
내가 글쓰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바로 이 '해방'이었다. 우리는 자신이 교육받은 것을 그대로 자신의 한계라고 인식해 버린다. 살아온 생활환경, 교육받은 배경 틀 안에서 갇혀 살아간다. 누구의 엄마, 한 가정의 가장, 회사의 대리,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등 어떤 역할 속에서 오늘을 해내고 있다. 내가 보고 자란 그 모든 것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여주인공 염미정은 회사에서 강요하는 동호회 가입 권유 압박에 '해방클럽'을 만들기로 한다. 뭐 하는 곳이냐고 묻는 회사 동료의 질문에 미정은 답한다. "뚫고 나갈 거야. 여기서 저기로." 물리적으로 갇힌 거 같진 않은데 꼭 어딘가 모르게 갇혀사는 것만 같다. 속 시원하지 않고 갑갑하고 답답하다. 해방하고 싶고 해방되고 싶다.
미정도 글을 씀으로써 상처받았던 마음을 고백하고 부서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단단해져 간다. 한 글자씩 눌러 담아 쓰기 시작하면 막연한 두려움은 이내 사라지고 내면의 나를 꺼내 이야기하는 독대의 시간이 생긴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변화한다. 과거의 상처받았던 나와 대화하고, 하루하루 잘 살아내는 오늘의 나를 위로한다. 언젠가 만날 조금 더 성장한 나의 미래에 편지를 쓴다. 글쓰기는 바로 나를 해방시키는 일이다.
#글루틴, #팀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