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치과를 방문했다. 누군가가 치과를 방문했다가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는 소식에 무서워서 안 간 게 화근이었다. 사실 어디가 아픈 곳은 없었고 검진과 스케일링이나 하자고 방문한 터였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반기는 선생님과 세상에서 가장 두렵지만 편한 의자에 누웠다. 검진을 하고 바람도 넣었는데 여기 안 아프냐고 바람을 계속 넣으시는데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후 들리는 공포의 소리, "여기 썩었는데 엑스레이 한번 찍으시죠."
그렇게 들어간 엑스레이 실에서 홈 파인 부분을 앞니로 살짝 물고 두 손으로 기계를 꽉 잡고 눈을 감았다. 뭔가 혼나러 기다리는 기분으로 다시 편한 의자에 앉아 있으니 꽤 심각하다는 목소리다. 이 부분이 다 썩어서 드러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안 아픈데 그럴 수가 있냐니깐 그럴 경우도 있는데 지금 이거는 심각해서 신경치료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 충치 빈 부분에 기둥을 세우고 채워 넣은 후에 씌워야 한다고. 치과를 몇 번이나 더 방문해야 하는 대공사 수술이다. 몇 년 만에 온 치과는 그동안 오지 않은 거에 대한 화남을 이렇게 표시했다.
뛰지 마! 개는 뛰면 더 쫓아와!
초등학교 때 동네 공원을 친구와 산책 중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해질 무렵이었고 갑자기 저 멀리서 우리 허리를 넘어 갈비뼈 정도까지 올라오는 큰 개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친구는 호들갑을 떨며 내 뒤에 숨어 다니며 날 뛰었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때의 일이 사실 잘 기억 안 나는데 친구는 내 반응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몇십 년이 지난 아직도 그때의 일을 얘기한다. 그때 나는 "뛰지 마! 뛰면 개는 더 뛰고 더 쫓아와. 그냥 가만있으면 개도 냄새 맡고 곧 갈 거야."라고 담담히 초등학교 5학년이 500년 산 사람처럼 얘기했다고 한다.
너 때문에 100분 토론이 일어났는데 잠이 오냐?
제주도로 친구와 놀러 가서 렌터카를 빌린 적이 있다. 오랜만에 해보는 운전이라 저녁 즈음 주차장에서 후진하다가 다른 차를 박았다. 사실 조금이라도 아껴보려 일반보험만 들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언니한테 전화로 얘길 했고 긴장이 풀려 피곤이 몰려온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보니 부재중 통화가 엄청나게 와있었다. 얘기인즉슨 "너 때문에 여기서는 100분 토론하고 보험사 알아보고 난리인데 넌 잠이 오냐? 진짜 신기한 애네."
다 해결책이 있다. 까짓 껏 세상이 무너진 것도 아닌데
한창 면접을 보러 다닐 때 면접관들의 공통적인 반응이 '여유가 있다'였다. 나는 그냥 어릴 때부터 여유가 있었다. 자세한 이유는 잘 모르겠고,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해결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큰 개가 다가오면 가만히 있으면 곧 가는 거고, 보험 안 든 차가 사고가 나면 나중에 추가 비용을 내면 되는 거고, 충치가 생기면 거둬내고 기둥을 세우면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못 해결할 게 없다. 그냥 해결되지도 않는 고민을 깊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삶의 속도를 좀 늦춰도 크게 상관없더라. 나중에 이 세상 떠나는 날 묘비에 이렇게 새겨줬으면 한다. '그저 여유롭게 살다가 이제 쉬러 갑니다.'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면 아름다움이 더 보일지 몰라요 @Roberto Nicks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