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드림 Aug 13. 2021

가슴의 물음표를 찬스로 바꿔서 글을 쓰게 하는 비결이란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를 읽고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외부 요인으로 흔들린다. 이 길이 맞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무언가에 휩쓸려 지나간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잃어간다. 쉼 없는 정보와 관계 속에서 제어 능력을 상실하고 마치 탁구대 앞에서 쏟아지는 탁구공을 끊임없이 쳐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급박함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써야 하는가? 에 대한 자문자답으로 이 글쓰기 책은 시작된다.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다  @kaitlynbaker, Unsplash


그런데 동류 집단을 벗어나 낯선 배치에 놓이는 기회가 글쓰기 수업에서 주어진다. 저마다 다른 삶의 이력을 갖고 있으며 고단한 삶에 쉼표를 찍고자 떠나온 사람들과 마주하는 시간. 젊은 농부와 프로그래머가 만나고 공무원과 예술가가 벗한다. 
- 다른 삶의 이력과 마주하는 시간


북클럽이 한참 유행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그렇고 또 책을 읽고 나와 다른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으로 막상 참여하기가 두려웠다. 글을 씀으로써 온라인으로 토론이 가능하고 다른 배경을 가진 이에게는 또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나의 편견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또한 내면을 살펴보는 시간이 펼쳐진다. 독서와 글쓰기의 마력은 내가 스치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연결시켜준다. 젊은 농부와 프로그래머가 만나서 이야기하고, 공무원과 예술가가 토론하여 책 한 권을 읽고 느낀 점을 주고받는다. 나에게 새로운 안경을 쥐여주는 셈이다. 



성폭력 피해 경험자들과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표현하고 아픔을 나누고 의미를 발견하면서 '피해자의 언어'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자기 고통을 자기 언어로 설명하는 일이 가능해질 때 고통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자는 누구나 약자다


성폭력 피해 경험자들에게 글쓰기를 하는 경험을 따라가본다. 누군가를 카테고리로 넣고 단정짓기엔 그들의 삶은 매우 소중하다. 각자 다른 이야기가 있고, 공감과 격려를 하며 겪은 고통을 자기의 언어로 쏟아내는 시간을 함께한다. 아픔을 나누고 의미를 발견하며 시작된 모임은 사람 곁에 사람, 자신의 복받치는 이야기를 들어줄 이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누구에게 말하고 글로 표현함으로 자신의 언어를 갖고 설명한다. 글을 써오지 않다 하더라도 백지 앞에서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 그 고뇌의 흔적 또한 자신을 표출하고자 하는 노력인 것이다. 

써야 할 게 마땅치 않아 또는 쓴 글이 맘에 들지 않아 고뇌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Dan Dimmock, Unsplash



계층적, 계급적, 젠더적 구분으로 가르기보다 관계가 단절되고 영혼이 옥조이는 이 물신주의의 체제에서 가짜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그래도 제정신으로 살아보려는 몸부림으로 여기까지 와닿은 이들과 어떻게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해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려 한다. 
- 내 몸이 여러 사람의 삶을 통과할 때 


어떤 소재가 나오기 시작하면 어느 바구니에 넣어 분리하려는 습관이 있다. 아마 바쁜 세상에 어느 정도 정리를 하면 이해하기 편하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계층적, 계급적, 젠더적으로 구분하기보다 이 심란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제정신으로 살아보려는 이들에게 어떻게 지속적으로 글쓰기라는 도구로 도움을 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아무리 그 사람의 언어로 겪은 내용을 문장으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한명이 겪은 경험과 분위기,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리라. 많은 책을 읽고 몸이 여러 사람의 삶을 통과할 때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B는 대학생의 필독서라서 의무감으로 읽었다는 고백으로 시작. 책을 읽었지만 마음의 부대낌만 남고 역시나 더 알게 된 건 없었다. "나는 그를 외로웠던 사람으로 기억한다"라고. 극단적인 선택이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못 견뎌서 혹은 동료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런 현실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가 아닐까라고 말한다. 

E는 친구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고등학교 때 교사가 "너희 공부 열심히 안 하면 공사장 인부가 되거나 그런 인부의 아내가 될 거다"라고 했는데 친구의 아버지가 인부였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가장을 이 사회의 낙오자로 취급하는 것에 분노했다고. 

적어도 '어떤 인격'과 '어떤 상황' 그리고 '어떤 느낌'이 보이는 글이다. 자신의 삶의 문제와 연결 지어 보고 자기 목소리를 내었다는 점이다. 
- 자기 입장 드러내기 


전태일의 글을 읽고 난 후기 중 공감을 많이 받은 두 이야기다. 글에는 단순히 그 글을 읽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읽고 나서 삶의 문제와 자신을 이어 보고 또 목소리를 내어 자기주장을 관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글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선택이 살인적인 노동시간 때문이 아니라 고독으로 메아리치는 현실에 비추어 재해석한 점이 놀랍다. 또한 친구의 경험에서부터 시작한 그의 글은 책임감 강한 가장을 낙오자로 취급하는 편견을 가진 교육자에게 분노를 표한다. 목소리에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교실에 앉아 분노하는 그를 지켜보는 시선을 가진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것을 삼갔을 뿐이다"라고 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학식이 높은 사람, 문장력이 탁월한 사람, 감각이 섬세한 사람, 지구력이 강한 사람 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쓰자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분명 많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겪고 느낀 바를 글로 풀어쓰는 것은 대단한 노력이자 행동인 것이다. 초반에는 나의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할까? 라 생각하니 쓸 거리가 없었다. 그러나 짧은 문장으로도 공감을 얻고 나서 점차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진 경우다. 내가 쓸 거리가 있어지고 또 주변을 돌아보며 소재를 찾는 일이 기운 나는 이유도 바로 내 글을 읽어줄 독자들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먼저 떠올려서다. 

그럼에도 쓴다는 것은 물음표를 환하게 밝히는 역할을 한다  @markfb, Unsplash


가슴에 물음표가 많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많다. 작은 자극에도 촉발을 받고 영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 사건이 지나간 자리 관찰하기


물음표가 많은 사람은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궁금한 걸 찾아보고 또 묻고 고찰하면 그 시간과 노력을 담아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이다. 왜 한국인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일기예보만 듣고 우산을 항상 무겁게 가지고 다닐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글이 많은 호응을 얻었다. 정말 외국인들은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느냐며 묻기도 하고 다양한 시각을 들을 수 있었다. 평소에 생각해 볼 수 없었던 소재로 모두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또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렇게 배움은 항상 즐겁다. 


글을 쓴다고 달라질 건 없겠지만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대한 고찰은 가능하다. 매일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일들에 온기를 불어넣고 나만의 시각으로 곱씹은 뒤에 자그마한 꽃봉오리를 피운다.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은 내 손으로 써야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쓴다고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내 손 안에서 작은 꽃송이 하나는 피울 수 있지 않을까? 



#북리뷰 #책 #글쓰기 #서평 #글쓰기의최전선 #은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