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시
밤처럼 까만 나와 낮처럼 하얀 네가
어떻게 인연을 넘어 연인이 될 수 있었을까
다시 우연을 넘고 넘어 필연이 될 수 있었을까
네게는 언제나처럼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겠지만
이번에도 고심 끝에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보았어
우리는 어느 전생에 흑과 백의 바둑돌이었을지 몰라
무승부라고는 있을 수 없었던 일상에서
서로가 더 큰 집을 짓기 위해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승부가 결정 나던 순간 누군가 기도했을 거야
'다음 생에는 도란도란 살게 해주세요.'
그 다음 생에 우리는 피아노 건반이었을 거야
하얗고 길쭉한 너와 까맣고 조그만 내가 함께였을 거야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기나긴 삶을 함께하면서
마지막 연주가 끝나던 순간 누군가 기도했을 거야
'다음 생에도 함께하되, 제가 더 길쭉하도록 해주세요.'
그런데 이제 기도를 들어주던 분의
(아마도 재채기 같은) 실수 혹은 안배로
이제서야 만나도록 시간축이 살짝 움직인 거지
여든 살에 만났어도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파뿌리가 검은 머리가 될 때까지 사랑을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