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

월간감자

by 감자

오늘은 일을 쉬었다. 허리에 침 좀 놔주고 파스 좀 붙여주고 샐러드 가게에 글 쓰러 나왔다. 드레싱에도 칼로리가 들어가길래 용기를 내서 샐러드에 드레싱을 뺐다. 패착이었다. 도저히 못 먹겠기에 사장님께 간곡히 부탁해서 발사믹 드레싱을 받아왔다. 사장님은 그저 웃으셨다. 이런 고객이 한둘이 아니었겠지.


우걱우걱 풀과 고기를 씹으며 샐러드에 대해 해보는 단상. 과연 샐러드는 정말 다이어트 효과가 있긴 한 걸까. 오만한 인간이 플라시보 효과로 살이 빠지고 있다고 뇌를 속이는 게 아닐까. 또 한입의 우걱우걱. 나는 닭 가슴살을 찢어먹으며 후라이드 치킨의 고소하고 짭짤한 식감을 그리워한다.


드레싱 없는 샐러드와 드레싱 뿌린 샐러드 사이의 간극은 송강호와 송강 사이의 그것을 초월한다. 잡념을 무한궤도에 올리며 또 한입. 우걱우걱 이외의 의성어는 쩝쩝 말고 무엇이 있을까. 오곡 오고곡. 사각사각. 갈갈. 꿀꺽. 의성어는 어렵다. 내가 동화책을 쓰기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다. 동화책은 의성어 투성이다. 그림과 의성어 만으로 흐름이 이어진다. 가나다라마바사를 그리고 아자차카타파하를 쓰면 한 권의 동화책이 완성된다.


오늘은 네 단락의 글을 쓰기로 했으니 네 단락을 써본다. 내일의 날씨는 눈과 비가 예정되어 있다. 내일도 일을 구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그래도 술을 먹지 말라는 연락도 함께 받았다. 나를 잘 알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고맙고 감사하고 고맙고 또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하고 죄송하고 미안하다. 더 나은 일자리를 소개해 주시겠다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더 나은 일자리는 무엇일까. 덜 힘들고, 덜 더럽고, 덜 위험하면 더 나은 일자리일까. 나는 나를 괴롭히고 싶다. 나는 보편적인 사람이 아닌가 보다. 힘든 일을 하고 맛없는 샐러드를 먹고 때로는 굶고. 나는 부처가 되어가는 중이다. 등선하여 신선이 되고 싶다.


오늘은 네 단락의 글을 쓰기로 했으나 다섯 단락째 써본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마다 기껏 쌓아 올린 자존감과 자신감이 부서져내린다. 자신감과 자존감은 지갑에서도 나온다. 그렇다. 지갑과 통장 잔고가 비어가면 나는 한없이 가볍고 쉬운 존재가 되어간다. 발사믹의 식초향이 입술을 자극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나는 빚을 내어 술을 먹고 그게 괴로워 안주를 시켜 먹고 빠지지 않는 뱃살을 탓하며 제로 슈거(Zero Sugar) 술을 찾아 마시고, 또 마시고. 그렇게 2023년을 보냈다.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심심 어린 침묵으로 격려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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