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월간감자

by 감자

글을 열심히 쓰고 책을 내서 돈을 벌면 다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대다수가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자격증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시간과 열정을 들여 글을 쓰고 책을 내라고 했다. 그게 맞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릇된 우선순위를 따라 글을 쓰고자 한다. 내 그릇이 이거밖에 안되기에.


내 그릇에 대한 고민이 많다. 현실은 용역도 힘들어 하루씩 재끼는데 주경야독을 하려 했으니. 걷지도 못하는데 달리려 했던 턱에 몸도 마음도 성하기 힘들었을 테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어른스럽지 못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후회하고 반성한다. 그런다고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닌데, 무엇에 위안을 받으려 하는지조차도 모른 채 후회하고 반성을 남긴다.


이럴 때는 판타지덕후에 망상병자답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해본다. 똑같은 실수는 막고 차선이라도 선택해서 피해 갈 수 있기를,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초능력이 각성했으면 한다. 로또 맞을 확률보다도 낮겠지만.


나는 쫄보의 심장과 야수의 뇌를 가져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는 한다. 특히 음주에 관해서는 후회와 반성이 부질없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실수한다. 치료가 필요하기 직전 단계 아닐까 싶다. 엄마는 이런 나에게서 돌아가신 아빠가 겹쳐 보이시나 보다. 막노동을 하고 돌아와서 더러워진 작업복을 보며, "아빠 일할 때만큼은 아니네." 혼잣말을 하시고, 술에 찌들어 들어와 엄마방 불을 켜고 자는 엄마를 깨워 해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면 다음날 "아빠랑 똑같네." 하신다. 아빠 살아생전에는 영 듣기 불편한 말이었는데 아빠가 돌아가신 지금은 아차차 싶고 엄마에게 더 잘해야지 생각해 본다. 물론 나도 아빠가 보고 싶다.


내 꿈속 아빠는 아직도 병상에 누워계신다. 내가 10살 무렵 아빠가 투병을 시작하시고 20년 가까이 투병을 하셔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빠는 자유로이 날아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병상에 누워계신다. 어쩌면 내 무의식이 아빠를 병상에 묶어놓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아빠를 위해 위로와 송별의 잔을 올려보자. 이제는 술이라면 진저리를 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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