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감자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며 내일을 기다리는 건 설레는 동시에 긴장되는 일이다. 오늘따라 잘 받는 카페인을 느끼며 의자 위로 올라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낯선 이의 생애가 주기적인 문자메시지를 따라 내 마음을 두들긴다. 잘 닿지 않던 연락이 한동안 이어질 때면 가슴속에 나비가 날아다닌다. 설렘만큼 긍정적인 불안이 있을까. 불안의 순기능에 심장이 콩닥인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만큼 긴장되는 거라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나는 이게 첫 연애도 아닌데 그만큼이나 긴장하고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상대이건만 알지 못하는 만큼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의 행동은 맹목적인 사랑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얼 위한 설렘인가. 나는 알 턱이 없다.
또 하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이 있다. '잘 되고 싶은 마음으로 출발해서 좌절하고 친구로 남기'냐 '친구로 생각하고 만나다가 잘 되기'중에서 하나를 골라보자. 물어보지 않아도 대답하고 싶을 때가 있다. 정답은 없겠지만, 나의 경우 상대도 나도 적지 않은 나이인지라 내 한없는 욕심으로는 구태여 연인으로 남지 않아도 좋으니 인연이라도 맺었으면 한다. 스스로 적지 않은 나이라 생각하기에 밀당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직구에 직구를 더해 당장 내일로 약속을 잡았다. 내 안에서 '이게 맞는지', '어떻게 확신하는지' 끊임없이 의구심이 들지만 내일의 나는 태연한 나를 연출할 것이다. 여태껏 그래 왔듯 벌렁이는 가슴을 여미고 불도저를 연기할 테다. 그게 '나'답다는 듯이.
일각에서는 '사람'에 대해 상처받을 나를 우려한다. "내가 애냐 그런 걸 걱정하게." 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너는 애야."란다. 이립(而立)을 넘긴 나이에 아이 소리를 듣는 것은 마치 지금 나이에 신분증 검사를 받는 것만큼 좋아해야 할 일이 아닐까. 끄덕끄덕. 납득이 된다. 저쪽에서 절레절레하는 횟수만큼. 그렇다면 반문하고 싶다. "사람이 인문학 서적도 아니고 책으로 어떻게 배워지냐? 사람을 만나봐야 안목도 넓어지고 연애에 대해 배우는 거지!" 맞는 말이다. 맞는 말만 하는 내가 싫지 않다. 오만함으로 점철된 오늘의 내가 내일은 겸손하고 위트 있는 사람을 연기한다. '사소한 몸짓 하나, 말투 하나까지 매력 있게 느껴지기를.' 바라는 대상 없이, 그리고 속절없이 기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