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중

그 첫 번째

by 달게

새벽 3시 40분 남편이 화장실에 다녀오며 켜진 현관 센서등 때문에 나도 잠이 깼다.

안 떠지는 눈으로 겨우 시계를 봤다. 눈꺼풀은 다시 붙었다. 하지만, 다른 감각들이 빛과 소리에 빠르게 깨나려 했다. 좀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베개도 불편해지고, 덮은 이불도 무겁게 느껴져 펄럭이며 고쳐 덮어본다. 다시 잠들고 싶다.


‘안돼! 조금 더 자야 해!’

애를 쓸수록 잠은 저만치 도망가고, 선명한 내가 드러나는 것 같다.

다시 잠들긴 글렀다. 이래서 오래된 부부가 따로 자는가? 괜히 남편 탓도 잠깐 했다.


일말의 희망은 눈꺼풀에 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눈꺼풀에 매달려 보자.

이렇게 뭉개다 보면 집 나간 잠이 돌아올 것이다. 한 이삼십 분 선명한 정신과 붙은 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잠이 5분 다녀갔을까? 알람이 울렸다. 5시다. 명절 아침이라고 1시간 일찍 설정해 놨었다.


알람은 차라리 나를 평온하게 했다. 잠과 실랑이는 안 해도 되니까. 눈꺼풀도 떨어져도 된다. 체온도 잠 깰 준비를 하는지 발이 더워져 수면양말을 벗었다. 코끝과 발끝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새벽 방 공기가 상쾌했다.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얼굴만 노천에 나와 입김이 훅훅 나오는 그런 차가움이랄까? 다른 점이 있다면 잠에서 깬 코끝에서는 맑은 콧물이 줄줄 흐른다는 것. 이불 밖으로 나온 발이 다시 쏙~ 들어가 따뜻함을 찾는다. 온몸을 비틀었다가 뻗었다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려는 의지를 팔다리까지 전달한다. 이불 밖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듯, 조금씩 빠져나온다.


거실로 나와 불을 켜고 소파에 다시 몸을 뉘였다. 거실을 밝힌 LED 빛은 새벽 공기를 더 차갑게 하는 것 같다.

밖은 아직 캄캄하다. 웅크린 채로 새벽어둠과 찬 공기에 적응하다가 아침에 만들어야 할 음식 생각에 마음은 벌떡, 몸은 힘겹게 부엌으로 향했다.


거실 공기보다 차가운 냉장고에서 양념에 잰 고기를 꺼내고, 냉장고보다 더 추운 부엌 베란다에서 프라이팬을 가져와 가스불에 올렸다. 뒤집고, 또 뒤집어 익히는 동안 전기포트로 팔팔 끓인 물을 잔에 부어 커피믹스 한잔을 탔다.


지지고, 볶고, 찌고, 끓여낸 음식을 상에 올려놓았다.


차례를 마쳤다.

세배와 덕담, 주고받을 것도 끝냈다.

친척들도 모두 돌아갔다.

나머지 뒷설거지와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소파에 나는 이쪽, 남편과 딸은 저쪽에 소리 없이 앉아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대로 잠들었다.


폭설, 강설을 알려오던 문자가 이틀 전부터 새해 인사 문자보다 많이 와 단단히 마음가짐을 했는데, 설날 오후의 발코니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자기만의 루틴은 버려야 하는 명절이지만,

잠도 설치고, 과식하고, 긴장하고, 불편한 시간을 각오해야 하는 명절이지만,

훌쩍 커버린 조카들의 멋쩍은 표정을 이때 아니면 볼 수 없다.

내 딸이 자기 혈족을 만날 수 있는 때도 이때 뿐이다.

1년에 딱 이틀 정도는 기꺼이 감당할 수 있다.

오늘 그 한 번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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