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할 결심
후배가 사표를 냈다.
입사 연도나 나이나 나와는 이십 년 가까운 차이가 있는 후배다.
후배는 올해로 만 8년을 근무했다.
그중 4년을 나와 함께 일하면서 경험한 성공과 실패를 내가 알기에 마음이 쓰이는 친구였다.
업무를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좋았고, 어려운 일도 어떻게 해서든 해내려고 하는 자신의 근성을 믿는 친구였다.
흔히 '꼰대' 선배들에게 이쁨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이 친구는 배신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배신'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밥 사 먹이고, 칭찬 많이 해주고, 인센티브도 챙겨줬고, 잘 키워서 관리자까지 승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데다가, 가장 중요한 신망을 두텁게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홀라당 다른 곳으로 가버리니 배신이 아니고 뭐겠는가. 전적으로 내 위주의 해석이다. 누가 밥 사달라고 했냐, 칭찬해 달라고 했냐, 승진시켜 달라고 졸랐냐고 반문하면 할 말 없다.
최근 퇴사한 후배들의 평균 근무 기간을 보니 대략 2-5년 정도다. 적성에 안 맞아서 일찌감치 옮기거나, 적당한 경력이 쌓였다 싶으면 다른 문을 열심히 두드리는 것이다.
애초에 장기근속할 계획은 없었고, 이직할 결심은 입사때 부터 했을지도 모른다.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게 평온하게 출근했다가, 오늘 퇴사 통보를 하는 것은, 뒤통수를 후려치고 도망가는 것과 비슷하다. 기분이 더러운 것은 물론이고, 마음 한쪽을 급하게 비워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이런 경험을 재작년에 했고, 작년에도 겪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해 다시 얻어맞은 뒤통수가 안 아프냐? 그렇지 않다.
사람에게 준 미운 정, 고운 정을 거두는 것은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럴 거면 '급작스럽게 퇴사하는 직원이 발생할 경우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한다.'는 문구라도 실무편람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8년을 넘기고 9년 차로 들어간 후배는 퇴사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었다. 한두 해만 더 지나면 승진할 터였다. 내가 너무 맘 놓고 있었나 보다. 근무 연차가 늘어나고, 승진하고, 또 지난한 세월을 보내면서 승진에 목을 매고 있는 나와는 다르다. 어느 것 하나라도 좋은 점이 있다면, 수평 이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이 급여든, 사람이든, 장소든, 타이틀이든 간에.
"거기는 뭐 여기보다 좋을 거 같아?"
농반진반 서운한 마음을 담아 퉁명하게 건네고는,
'여기가 싫어서 가는 건데,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 좋겠지.'라고 생각했다.
취업 정보 사이트에 들어가 추세를 살폈다. 아무도 모르게 이직을 꿈꿀만한 채용 공고가 있는지 뒤적이다가, 내가 갈만한 곳이 있는지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어떤 곳은 일요일에 근무해야 해서 탈락, 어떤 곳은 계약직이어서 탈락, 맘에 드는 곳은 내 스펙이 모자라서 탈락, 입사를 가정하고 보니 갈 곳이 없었다.
나에게 수평 이동은 어렵다.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인정해 줄 곳은 없었다.
마이너스 옵션이라면 모를까? 어느것 하나 포기가 안된다.
가장 포기하고 싶은 것은 나이인데 불가능하다.
결론이 이렇게 되면 안 되지만,
사표 쓴 후배가 부럽다.
이 부러움까지 후배에게 쏟았던 마음은 곧 정리되겠지.
사진출처: tvN드라마 미생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