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콩 체포 작전
[2024년 11월 17일]
지난주 뽑아놓은 콩이 비닐하우스 안에 산처럼 쌓여 있다.
'이 콩 다 털어야 집에 갈 수 있다.'
콩쥐가 된 기분이다.
누가 잘 쓰는 말처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 콩 터는 거 힘들다. 작고 까만 콩알을 바짝 마른 뻣뻣한 깍지 안에서 꺼내는 작업, 그 작고 작은 까만 콩알 먹겠다고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콩깍지를 모두 부숴보고, 까발린 콩깍지도 다시 만져 확인하는 수고로움을 거쳐야만 겨우 한 바가지 얻을 수 있다.
올해는 콩을 많이 심었다. 작년 수확한 콩을 이집 저집 나눠 먹었던 기억이 좋아 좀 더 많이 심었는데, 마른 콩을 뽑아 쌓으니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니다. 엄두가 나지 않아 말린다는 핑계로 비닐하우스 안에서 보름이나 방치했다.
[2024년 11월 24일]
커다란 비닐을 깔고 뿌리째 뽑아온 콩을 척척 몇 그루 놓는다. 그 위를 재활용 현수막으로 덮는다. 그리고 내가 그 위로 올라가 발로 팍팍 밟아준다. 그러면 콩깍지만 부서지면 좋으련만 곁가지 까지 아작아작 쪼개진다.
와자작, 부직, 버적, 부러지고 바스러진다. 그다음 현수막을 거두고 기다란 작대기로 콩 줄기를 친다. 이것이 콩 타작이겠다.
부서지고, 깨지고, 짜부라들게 해서 콩이 떨려 나오게 한다. 콩은 나뭇가지 아래로도 떨어지지만, 공중으로도 날아오르고, 날아오른 콩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포물선을 그리며 사방으로 튄다. 줄기를 한 놈씩 붙잡고 흔들어 본다. 영화 파묘에서 김고은을 상상하며 흔들다 보면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난다. 딱딱한 콩깍지 안 작은 공간에서 콩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예민하게 찾아내야 한다. 마른 잎사귀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분명히 다른데 대충 들으면 다 같은 소리같다. 신점을 치듯 정성을 들여 흔들고 신중하게 듣는다. 그리고 찾았다 싶으면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비벼 콩을 꺼낸다. 귀찮다고 대충 했다가는 먹을 게 없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아직 공정이 더 남아있다.
부러진 가지, 부서진 잎, 흙,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껴있거나 흩어져있는 까만 콩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순서도 바꿔보고 도구도 바꿔보고 했지만, 일만 더뎌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공법을 택했다. 우선 갈퀴로 부러진 가지와 큰 잎사귀를 훑어 낸다. 얼기설기한 갈퀴 살 사이로 콩과 작은 잎, 흙, 부서진 가루는 그대로 남는다.
'온고지신(溫故知新)', 키질과 선풍기를 결합했다. 한 움큼 콩을 집어 쓰레받기에 담는다. 키로 쓸만한 게 이것 밖에 없다. 이때 전기동력이 필요하다. 선풍기를 강풍으로 켜놓고 그 바람 앞에서 키질해 콩을 제외한 나머지가 날아가게 하는 것이다. 무거운 콩은 쓰레받기에 남고 콩보다 가벼운 것들은 바람 방향으로 날아간다. 춥지만 아주 효과적이다. 먼지를 내가 다 뒤집어 쓰지만 신속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 나간 콩을 수색한다. 콩은 깔아놓은 비닐 위에만 떨어지면 좋겠지만, 비닐하우스 전역에 걸쳐 발견된다. 숨은 콩을 샅샅이 뒤져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콩 체포조는 집요하게 후퇴 없이 한 번에 끝낸다.
[2025년 1월 5일]
수확한 콩은 친정엄마, 자매들과 나누고, 동호회 문우님들과도 한두 번 밥에 넣어 먹을 양을 나눴다.
구수한 콩밥 냄새가 식욕을 더 돋운다.
[2025년 1월 7일]
자! 이제 제대로 수색하고 제대로 체포하자!
콩밥 좀 먹여줘 봐?
아이~C
콩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