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많은 별 중에

너 하나를 쳐다본다

by 달게

큰 도서관에 다녀왔다.

한국 수필이 꽂혀있는 서가 앞에 서서 도서 제목을 훑어봤다.

재미있는 제목이 내 시선을 끌어, 책을 뽑아 표지를 넘겨 목차까지 보고는 다시 제자리에 꽂았다. 또 다른 책을 골라 그냥 후루룩 먼지 털듯 넘겨 보고 제자리에 뒀다. 내 손에 뽑혔다가 꽂힌 책이 열 권을 넘길 때쯤 되면, 제목을 보는 눈은 더 신중해진다. 나는 괜찮을 책을 찾는 중이다. 한 번에 3권만 빌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겁게 가져갔다가 그대로 반납할 그런 책은 걸러야 했다.


제목 싸움으로 시작한다. 책등 모서리에 세로로 써진, 많게는 열다섯 자에서 스무자, 적게는 한 글자까지, 도서관 서가는 제목 혈투 현장이다. '~하지만 ~하고 싶어', '오늘~하겠습니다.', '어차피~', '아무튼~', '여전히~'.

그다음은 표지디자인 싸움이다. 트렌디한 표지디자인이 감성을 자극했다면 표지를 넘겨 다음 허들인 목차로 향한다. 여기까지 좋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본문 첫 문장에서 훅! 낚아채야 한다. 더 읽을 것인지 책장을 덮을 것인지. 이렇든 저렇든 결론은 제목 싸움에서 이겨야 본문 첫 문장도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서가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높이에, 좌우로 양팔을 벌린 것의 두 배, 아니 세배 폭만큼 되는데, 수필로만 가득 차 있다. 제일 높은 곳은 이동식 계단이 없으면 꺼낼 수가 없다. 팔을 뻗어 잡을 수 있는 거리의 책만으로도 이미 태평양이다. 꼭대기 책들은 눈을 찡그려 뭐라도 읽어보려고 초점을 맞춰보지만 이내 포기하고 눈길을 거뒀다. 나는 상상해 본다. 저 꼭대기에 내 책이 있다면, 눈길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억울해할까? 아니면, 꼭대기라도 자리할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을까?


어떤 책은 한 번도 뽑히지 않은 책처럼 책장을 넘긴 흔적이 보이지 않고, 어떤 책은 서문을 지나 목차까지, 어떤 책은 첫 번째 에피소드까지는 읽힌 흔적이 있다. 완독 했을 것 같은 책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어쩌다 발견하고 보면, 유명인의 책이다. 유명 유튜버, 유명한 배우, 유명 가수, 유명한 개그맨....

그들의 책에는 손때가 끝까지 골고루 묻어있다.


어느 인터넷서점 에세이 코너는 종류가 무려 스무 개로 나눠져 있다. 감성에세이, 독서에세이, 동물에세이, 치유에세이, 여행에세이, 예술에세이, 음식에세이, 휴먼에세이....

'휴먼에세이'가 제일 웃긴다. 대체 이 모든 게 휴먼에세이가 아니고 뭐냐고요. 참나~


나는 글을 쓰는 동안 이 세상에 작가는 나 혼자라는 망상에 빠진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짜잔!', 발행버튼을 눌러 글을 발행하고 나서, 브런치 나우에 가서는 바로 망상에서 깨어난다. 기다렸다는 듯 내 뒤를 이어 이삼십 초 간격으로 새 글이 업로드된다.

'아니, 내가 글 올리는 걸 어찌 알고, 이때다 싶게 업로드를 하는 거지?'

화면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하나씩 진입한 새 글에 밀려 내 글은 어느새 1쪽에서 사라져 버린다.

서가에 가득한 에세이 숲이, 인터넷 서점의 휴먼에세이 외 열아홉 개의 에세이 분류가, 매 분마다 쏟아지는 브런치 스토리 물량이 '현실'이라는 찬물을 양동이로 내게 퍼붓는 것 같다.


나의 선택을 받은 수필 두 권을 대출해 왔다.

한 권은 제목과 표지디자인 허들을 넘어 본문 첫 문장이 나를 낚았고, 한 권은 유명인 12명이 함께 쓴 에세이집이다.

제목싸움에서 이긴 책.

이렇게 많은 글 중에 너 하나를 쳐다본다.



제목은 김광섭님의 시 '저녁에'에서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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