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그래서 : 미니스커트와 외모 강박
시를 쓰는 선배가 있다. 선물로 준 시집에서 흥미로운 시 한편을 발견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 나지 않는데 시의 내용은 대략 그러했다.
스물다섯살에 산 빨간색 스커트. 허리가 맞지 않은지 오래 되었는데도 옷장을 정리하면서 해마다
그 옷을 버리지 못한다고 했다. 치마를 버리면 차마 스물다섯 꽃 같았던 추억마저 사라질 것 같아 결국
해마다 그 스커트를 다시 옷장에 넣는다는 내용이었다. 시가 가슴에 들어왔다. 그리고
시의 향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나이가 되었다.
이사를 다니면서도 늘 옷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두 벌의 옷이 있다. 시 처럼 차마 버리지 못하는
두 벌이 옷은 23인치의 허리를 자랑하던 청춘의 웃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가리라고 생각했던 푸르른 그 청춘이, 결국 이런 날로 다가왔다.
어느 봄 날. 한 여성의 날렵한 뒤태를 따라가다 뒤돌아선 그녀의 얼굴에 화들짝 놀란 일이 있다.
나보다도 10살은 많아 보이는 외모, 주름이 깊은 얼굴에도 짧은 미니스커트와 하얀색 스타킹을 신고
거리를 활보하던 그녀 앞에 '어머나!'라는 충격적인 탄성이 절로 새어 나왔다.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매일 만나는 옷장에 가득한 나의 옷들은 이미 나이의 기억을 잃고 있다.
스물에 샀느지 서른에 샀는지 마흔에 샀는지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는 나의 옷들은 제 멋대로 섞여서
내 나이를 지배한다. 어느날 생각없이 옷을 입고 나서다가 쇼윈도우에 비친 내 옷에 내가 놀라 고개를
숙일때가 있다. 하루종일 불편하다. 아, 이건 아니지 싶어 부끄러움도 고개를 든다.
몰랐다. 아침마다 옷을 들고 고민하게 될 줄 말이다. 고민하는 습관은 나이 오십이 나에게 준 반갑지 않은
선물이다.
'몸에 어울리는가?'의 고민은 진즉 내 곁을 떠났다. '나이에 어울리는가?'의 고민이 둥지를 틀었다.
화들짝 나를 놀라게 했던 짧은 미니스커트와 하얀색 스타킹의 '언니'가 몇일동안 가슴에 남아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주책같은 충격을 주는건 아닐까 원치않은 고민이 깊어졌다.
TV 켜봐라.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화려한 짧은 치마가 범람하는데 뭐가 어떻다는 말인가?
발칙한 상상으로 거칠게 항의했더니 어느날 짧고 명쾌한 지인의 답이 돌아왔다.
"그 사람들은 연예인이잖아."
오십이 넘은 '일반인' 여자의 옷장은 매일 고민이 깊다.
주저없이 밖으로 나가야 하나, 소리없이 이곳에서 잠자야 하나.
매일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