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나이 오십

1막 그래서 # 당당함이 부러워

by 제이 유

청소를 하다말고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모처럼 만져보는 피아노.

아이들이 고등학교로 대학교로 입학하여 둘 다 객지로 떠난 뒤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던 작은 방에

피아노가 놓여있다. 먼지를 털어내다 말고 건반을 하나 튕겨본다.

'도!' 울림이 작은 방에 가득하다. '레!' 청아한 건반음이 마음을 퉁 치고 간다.

기왕 시작한 거 몇 개 더 건드려볼까? '미!파!솔!' 서너개를 더 두드리는데 갑즉스런 초인종이 울린다.

건반을 두드린지 10초나 되었을까? 문을 여니 너무도 당당해 보이는 웬 여고생이 문앞에 서있다.

"아주머니! 제가 고3이라서요..."

너무 당당한 학생의 목소리에 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여고생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요?"

"제가 고3이라구요... 고3.."

기가 막혔다. 도레미파솔.. 겨우 5개의 건반 아닌가? 10초도 되지 않는 시간을 득달같이 달려와

따지고 선 이 당당함은 뭔가?

'네가 고3인데 나더러 뭐 어쩌라구? 대한민국 고3이 무슨 훈장이야? 고3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숨죽여

살아야하는 거야? 너희들 대학가는 일이 그렇게 대단해? 어쩌라구... 고3인데, 뭐 뭐? 뭐 어쩌라구?'

악다구니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단 마음을 쓸어내리고 낮은 소리로 내 마음을 다스려본다.

얘는 뭐지? 무식한 아줌마가 아파트에서 남들에게 피해 끼치며 피아노를 쳤다고 이렇게 달려왔나?

갑자기 주눅이 든다.

"아니... 건반 두개 건드렸어요... "

여고생은 쌩하니 돌아선다. 기가 막히다. 시계를 보니 오후 8시다.0

뭐가 그리 당당한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고3 젊음의 특권인가?

여고생이 가고 나니 한박자 늦게 갑자기 분노가 솟구친다. 갑자기 왜 난 주눅들어서 그 아이를 대했을까?

무엇이 날 그리 만들었을까? 무엇이 날 죄인이 된듯 주눅들게 했을까?


나이로 인해 나를 더욱 주눅들게 만들었던 일련의 기억들이 괜시리 화를 더 부추긴다.

SNS를 능숙하게 다루는 젊은 직원 속에서 무식한 초라함을 들키기 싫어 아는척 하다가 당했던 낭패감,

깨알같은 글씨로 결재를 올린 젊은 직원 앞에서 돋보기를 쓰기 싫어 보이는 척 오만상을 찡그렸던 열패감,

두어숟갈 먹고도 배부르다는 후배들앞에서 배부른 척 하다가 결국 손이 덜덜 떨리다못해 후둘거렸던 속상함.

세상은 자꾸 몸으로 마음으로 오십의 여자를 주눅들게 하고 있다.

사소한 분노를 읊어대니 친구들이 위로랍시고 한마디를 건넨다. "얘. 갱년기야."


당당한 젊음이 부러운가? 아니, 부러우면 지는거다.

결단코, 아직도 나는 당당하다. 당당하자. 당당하자. 그래, 당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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