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보내드릴게요!
얼마 전 친구가 핸드폰을 바꿨다.
늘 손에 익은 우리나라 제품을 사용하더니 좀 더 나이 들기 전에 20대 젊은 친구들이 애용하는 다른 나라
제품을 꼭 한번 써보고 싶다고 했다. 왠지 그 폰을 손에 쥐면 좀 더 젊고 세련된 감각을 누리게 될 것 같다나?
그 폰은 크기가 좀 작다. 눈도 침침한 노안이지만 더 늙기 전에 써보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 못할 리 없었다.
게다가 자판의 구조도 달라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라도 청춘과 동행하고 싶은 마음을
뉘라서 모를까.
그렇게 폰을 바꾸고 일주일.
작은 회사의 대표로 있는 친구가 미팅을 가는 길이었다. 열심히 운전하며 달리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잘 알고 있는 협회에서 행사를 하는데, 여성 관계자 몇 사람을 행사에 참석토록 권유해달라는 요지였다.
친구는 지역의 여성계 주요 인사로 발이 넓다.
벌써 두어 번의 요청이 있었고, 요청이 시급함을 알리는 확인 문자였다.
마침 신호가 바뀌어 신호대기 중에 문자를 날렸다. 아직 핸드폰이 손에 익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지만,
급한 대로 문자 보내기에 성공했다. 목적지에 이르러 주차를 하는데 협회에서 답문자가 날아왔다.
눈에 보이는 문장의 첫 줄이 심상찮다.
"대표님. 아주 터프하시네요..ㅋㅋㅋ"
무슨 소리지? 내가 터프하다니? 내가 뭘 어쨌다고? 무슨 실수를 했나? 친구는 별별 상상을 다하다가
자신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얼른 훑어보았다.
관계자 몇 분을 골라서 보내드리겠다고 생각하며 쓴 문자 한 줄.
"몇 분 보내드릴게요!"는 "몇 년 보내 드릴게요!"로 둔갑해있었다.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박장대소하며 눈물이 빠지게 웃었다. 아고아고 손바닥까지 치면서 말이다.
"운전 중인데 눈도 침침하고 자판도 낯설고 글자도 잘 안 보이고.. 아이고, 그 핸드폰은
자판이 왜 그 모양이야. 글씨도 잘 안 보이고 크게 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정말 내가 부끄러워서 미치겠다. 나, 욕이라고는 이 놈 저 놈도 안 하는 사람인데.."
친구야, 친구야! 꺼이꺼이 눈물을 훔치며 웃음을 마무리한다.
전화를 걸고 받고 메시지를 받고 보내고 카톡을 받고 보낸다. 은행 갈 일도 해결하고 공적 서류도 뗀다.
요리에 관한 레시피도 찾고 오래된 친구도 찾아본다. 얼굴 책은 가끔 눈요기만 하고 인별 그램은 아들이
기껏 공들여 만들어주었는데 별로 쓸 일이 없다. 메신저도 가입은 되어있는데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나의 스마트폰 사용설명서다.
온 생활이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에 비하면 매우 약소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돈 내는 만큼
기본은 쓴다고 본다. 물론 종종 아까운 일도 벌어진다. 스마트폰으로 각종 혜택, 온갖 할인정보를
취합하고 분류해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 깊이 무한한 존경을 보내지만,
아들 세대가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데 양보하자는 마음으로 거 끼 가지는 배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같은 폰 쓴다고 청춘이 돌아올까마는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청춘에 대한 정서적 동질감의 추구(?).
친구야, 젊은 친구들 따라 하다가 동티 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