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심으로 산다.
신입 PD가 입사를 했다. 함께 일하는 아나운서와 함께 점심을 사주겠다고 나선 길.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이제 갓 서른을 넘은 두 남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 중이다.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다 좋아합니다. 무엇이든 잘 먹습니다. 사주신다면 가리지 않습니다, "
이래야 옳다고 보는데, 다르다. 달라도 한참 다르다.
나 때는 선배가 밥을 사준다면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무엇이든 잘 먹었는데 요즘 애들은
정말 확실하구나. 긴급회의까지 해가며 메뉴를 고르는 똑 부러지는 그들의 상황에 감탄하고 있을 때
드디어 의기양양한 포스로 두 사람이 다가왔다.
"일단 나가서.... 둘러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에잉? 기가 막혀 웃음이 났다. 둘러까지 보고 그제야 결정을 하시겠다?
내 안의 꼰대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참이다. 배꼽시계가 울린 지 한참이다.
나는 밥심으로 산다. 30분만 늦어도 손이 떨리기 시작하는데 얘네들은 도대체 뭘 먹겠다는 거야.
갓 서른의 두 남자를 앞세워 나는 거리를 걷는다. 햇살이 따가운 한낮의 도심. 어지간하면
아무거나 먹지 싶어 뒤통수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도무지 어디도 들어갈 생각이 아닌가 보다.
이곳을 기웃, 저곳을 기웃, 같은 골목을 두어 바퀴나 돌면서 이 나이 든 선배를 훈련시키더니
불쑥 얘기한다.
"결정했습니다. 수제버거 먹겠습니다."
아, 나는 절망했다. 배꼽시계가 요동치는 내 위장에 얼큰한 김치찌개나 부대찌개를 채울 요량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꼴랑 햄버거 따위라니. 너희들은 그거 먹고 배가 부르니? 목까지 나오는 아우성을 잠재우며
버거집으로 향했다.
버거와 튀긴 감자를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나는 자꾸만 김치 생각이 나고 얼큰함이 떠오르고
밥공기가 아른거렸다. 아주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버거를 물고 있는데 생각은 자꾸 다른 곳에 있다.
수제버거를 먹고 날씬한 배를 두드리며 가뿐하게 일어서는 그들을 등진채 계산을 하면서
내 마음은 자꾸만 질척거린다.
이 돈이면 김치찌개 두 그릇을 사 먹고 공깃밥도 추가로 먹겠네.
아! 배도 차지 않는 그 노무 버거는 값만 비쌌다.
너희는 버거심으로 사니? 대한민국 꼰대, 그래 나는 밥심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