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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유 Jun 09. 2021

라떼마마 흥얼흥얼

밤을 지새우는 혼잣말

세찬 태풍과 함께 날씨가 변화무쌍했다.  몇몇 기자들은 퇴근하지 못하고 밤샘을 했다. 

이른 아침. 지난밤의 보고를 듣기 위해 막내기자와 전화통화를 했다. 

"고생했네. 밤새 한숨도 못 잤죠?"

"아예. 하얗게 샜습니다. 괜찮습니다. 제 일인걸요..."

"애썼네. 얼른 들어가서 좀 쉬어야지. 눈 좀 붙이세요..."

여기까지 끝내야 했다.  고생했다고  마음 전했으면 여기서 마무리해야 했다. 

그러나 내 마음속 오지랖 퍼가 한마디를 더 거들고 말았다.


"그런데 박기자! 그렇게 하얗게 밤새고 해가 막 떠오르는 거 보면.. 왠지 막 그런 거

있지 않아요?  뭉클하게 솟는 뭐 그런 거. 모두가 잠들었을 때 나는 뭔가를 했구나 싶은 

뭐 그런 거... 나 때는요.. 태풍 때  방송한다고 5시간에 걸쳐 출근을 했는데, 그날 아침에.."

방학이라 집에 내려와 있던 둘째가 곁에 있다 말고 나의 통화소리에 화들짝 놀라

모기만 한 소리로 얼굴에 대고 속삭인다.

"엄마.. 그만... 꼰대 소리 들으세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람 따위는 집어치우고 야근수당이나 달라던 어느 젊은 친구의 책 제목이 

휘리릭 눈앞을 스쳐갔다. 킬킬 웃음이 난다. 

나는 '나 때'를 통해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개도 안 물어간다는 성실함? 기자 정신? 보람? 사명감? 

책임감? 충실함? 직업의식? 열정?   


젊은 세대가 말하는 꼰대들의 진부하고 투철한 역할놀이에 충실해 온 나의 지난 삶이

언제부터인가 젊은 세대에게 '라테'의 삶으로 배척당하고 소외되어간다.

솔직히 뜨악할 때도 있다. 도대체 켜켜이 쌓이는 세월 속에서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 

그만 하라고 해서 할 소리를 다 못하고 아니하면 안 된다고 해서 안 하고 산다. 

억울한 건 젊은 세대만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내 안의 '라테' 본능이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살아온 지난 시간이 통째로 거부당하는 느낌을 누가 알까?


내 감정이 우선이고, 일 처리 명확하고, 할 소리 해야만 직성 풀리는 젊은 세대 앞에서

왜 나의 지나온 경험은 쉰내 나는 몹쓸 꼰대 감성으로 치부되어 버린 걸까?

잘잘못을 가릴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결 다른

감각 앞에서 소모적인 감정전을 혼자 펼치는 기분이다. 어떤 때는 지친다.


젊은 후배와 일을 처리하다가 불꽃 튀게 부딪혔다. 옳고 그름은 없다. 서로 다름만 있을 뿐.

서로를 인정하면 결론은 나지 않는다. 첨예하게 의견은 부딪힌다. 누가 양보해야 하나? 

라테의 경험으로 무조건 밀어붙일 수도 없다. 창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받아줄 수 만도 없다. 

선배 앞에 의견을 꺾지 않는 후배의 고집도 한 고집이다. 어지간하면 "제가 좀 더 생각해볼게요."라고

물러서 주면 좀 좋아 (이건 완전 나의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화가 다 솟구쳐 올랐다. 

새파랗게 젊은 후배를 견뎌보자, 참아보자, 나를 다독인다.

개운하지 못한 마음으로 퇴근길에 오른다.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 말고 또 불쑥 괘씸한 후배 녀석이 떠올랐다.

"뭐? 네가 해보면 얼마나 해봤다고? 실패를 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쉬운 길을 알려줘도 못 알아들어요.. 

뭐? 꼰대 짓? 웃기는 소리 하네. " 

비 맞은 중처럼 구시렁거리다 말고 냉수 한 사발을 들이붓는데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한참을 혼자서 씨부리고 나니 터진 울화통이 조금씩 진정된다.

내일을 위해 잠이나 자야겠다 싶어 이불을 훌러덩 뒤집어쓰고 나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잊자. 잊자.

그리고는 나를 다독인다.

'그래 그러니까 30 대지. 그 고집도 없으면 50 대지 50대야. 나도 30대는 사는 게 투쟁인 줄 알았잖아.

앞뒤 가리지 않고 그렇게 가야 30 대지. 그래서 많이 싸웠지.'

문득 떠오른 20년 전 자화상 앞에서 나는 마지못해 웃고 있다.


이해를 한 건지 이해를 하자고 노력하는 건지 꼰대인 나는 밤새 뒤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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