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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y 14. 2022

관계


지난 월요일에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A로부터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라는 카톡을 받았다.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받은 일방적인 통보에 나는 매우 당황했다. 이유를 물으니, A는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들 때문에 오래전부터 심기가 불편했고 이제는 더 이상 신경 쓰기 싫으니 그만 알고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A가 기분이 나빴다고 거론한 일들은 그도 '시시콜콜해서 말하기도 싫지만'이라고 표현할 만큼, 내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아주 사소한 일 들었다. 게다가 A는 그 일들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고, 사건발생의 선후관계나 인과관계를 철저히 그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었다. 당신이 아는 것은 사실이 아니니 오해를 풀라고 하려다가, 나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 관계를 끊겠다고 마음먹고 달려드는 그에게는 어떤 말도 진실되게 들리지 않을 것 같아 말을 멈췄다. 내가 '그게 아니라... '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 둘은 정말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나의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 사그라들면 A가 나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서, 나는 그대가 불편하다면 당분간은 연락하지 않겠다고 하고 입술을 꾹 깨물며 카톡을 닫았다.


지난 2년 간의 사회적 거리두기 동안, 내가 잠시라도 얼굴 보자고 할 때마다 A는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 만나자고 했다. 나를 이리저리 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간 함께했던 시간을 고려하면 그럴 리 없다, A는 건강을 철저히 챙기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오히려 거리두기가 해제되어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 더 반가울 것이라고 기대하며 어서 빨리 만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A가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웠다. 연락을 끊자는 말을 들은 그날은 머리가 아팠고 다음날은 화가 났으며 그다음 날은 눈물이 났다. 불편한 감정이 켜켜이 쌓일 때까지 나에게 별 말을 안 한 A가 야속했고, A의 불편함을 눈치채지 못한 바보 같은 내게 화가 났다.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할 때, 크게 싸우더라도 사실이 아님을 바로 설명하고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했어야 하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고, 좋은 관계가 무너진 것에 대한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가끔 사람들을 대할 때, 내가 백화점이나 마트, 콜센터 등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고객을 대하는 직원이라고 생각하며 행동할 때가 있다. 대체로 말 많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친척, 어려운 시댁 어르신, 잘 맞지 않지만 모셔야 하는 직장상사와 같이 최선을 다해 봉양해봐야 겨우 본전을 찾을까 말까 하는 경우, 나와 코드가 맞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교류해야 하는 경우에, 나는 그들을 회사 '고객님'처럼 모신다는 마음으로 행동한다. 점원이 고객을 대하듯 최대한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여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딱 그들이 원하는 것만 제공하는 거다. 이 방법은 마음을 다했다가 수차례 비난과 마음의 상처를 얻은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든 나름의 인간관계의 방어막이다. 어차피 나를 진심으로 대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비난을 피함으로써 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취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며칠 밤을 뒤척이다가 어쩌면 나와 A가 친한 관계를 맺는 인연은 여기까지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보다는 기분 상하지 않을 정도의 외형적 친절에 더 신경을 쓰는 관계에 그쳐야 할 것 같다. 이제 A는 또 하나의 나의 '고객님'이 되었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느낌이지만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오늘 밤은 잠을 좀 잘 것 같다.


오후에 서점에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요즘 먹는 약이 호르몬 변화를 가져온다던데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것 같다. 버스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내 일그러진 표정을 사람들에게 들키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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