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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y 21. 2022

책 다시 보기, 아이 덕에 얻은 의외의 작은 소득

"딸, 오늘은 자기 전에 월요일에 엄마가 읽어준 책의 나머지 다 읽어 줄게"

"싫어, 오늘은 불금이야. 친구들이랑 밤 12시까지 게임하기로 했어. 엄마 먼저 자."

"그럼, 저녁 먹고 30분만 오디오북 들어봐. 안 들은 지 한 달도 넘었다."

"내가 할게 얼마나 많은데, 생각 한번 해볼게."

"......."


6학년이 되더니 딸과 책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중학교 가면 더하고 고등학교 가면 더 하다는 말에, 요즘 저의 조바심이 보통이 아니에요. 어떻게 해서든 책에서 손을 놓지 않게 하려고,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고 오디오북도 틀어주려고 하지만, 아이는 살살 잘도 피해 갑니다.


수능 국어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엄마들 사이에서 국어실력 키우기가 화두 되고 있어요. 초등생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자녀의 문해력 향상에 관한 책들이 서점 신간 코너에서 자주 보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이런 종류에 책에는 문해력이 높으면 국어, 영어뿐 아니라 수학까지도 잘하게 된다(그래서 내 애들을 모두 다 서울대에 보냈다는 결론), 아이들이 책을 열심히 읽게 하려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 필독서는 이런 것들이다 등등 정보가 참 많이 담겨있어요. 다 맞는 말인데 읽어보면 그냥 남의 성공담이 감흥은 없지만 저처럼 불안한 부모들에게 잠깐의 안정감을 주기는 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제가 좋아하는 독서토론 강사 권일한 선생님이 한 시민단체에서 열었던 문해력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분은 스스로를 책벌레라고 부를 정도로 책을 정말 좋아하는 초등학교 교사인데요, 강원도 산골 초등학교에서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겪었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책 읽는 즐거움과 책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어요. 아이와 같이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덧 우리 아이는 책과 친해지고 문해력도 높아져 있을 것이니, 그저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라고 하시네요.


https://blog.naver.com/noworry21/222720628120


내용은 앞서 서점에서 봤던 책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 이상하게 권 선생님의 방법은 해볼 만해 보였습니다. 이분의 방식을 약간 변형하여, 2주에 1권이나 1달에 1권 정도를 아이와 엄마 아빠가 각각 읽고,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될 것 같았거든요. 방법을 좀 더 자세히 알면 좋을 것 같아서, 권 선생님이 중학생이 된 제자들과 진행했던 독서토론 사례를 모은 책 <10대를 위한 행복한 독서토론>을 빌려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빌린 책을 반쯤 읽었을 때, 딱 결론이 났습니다. 이건 내가 못하겠구나. 독서토론 진행의 핵심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토론 주제를 뽑아내는 것이겠죠. 그러려면 아이가 볼 책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하는데 저는 그럴 능력과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혹시나 우연히 제가 토론 주제를 뽑아냈더라도 자녀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고 흥미를 잃지 않게 토론을 진행할 자신도 없고요. 어른 둘(부모)에 아이 하나(자녀)는 나이, 지식, 경험치 측면에서 차이가 현격하여 토론에 적합한 인적 구성도 아니지요. 숙련된 독서토론 선생님이 술술 설명해주니까 아이 대상의 독서토론이 쉬워 보였나 봐요. 끊임없이 책과 토론 방법론을 연구하고 아이들과 부대끼며 얻은 노하우로 다져진 전문가의 영역을 제가 함부로 침범하려 했더라고요.


아이와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겠다는 겁 없는 꿈은 접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독서토론을 하겠다고 하다가 아이한테 짜증을 내느니, 제가 지금까지 하던 대로 자기 전에 가끔 책 읽어주기로 쭈욱 갈래요. 침대에서 엄마와 아이가 킬킬거리며 책을 같이 봤고, 그때 참 재미있었다는 추억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려고요. 책을 멀리하는 문제, 문해력을 끌어올리는 일은 자본의 힘을 빌려 해결해 보려 해요. 괜찮아 보이는 독서토론 학원에 보내서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한 달에 책 1권을 읽게 하는 것으로 저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보렵니다.


토론 사례집을 보면서, '이 책은 이런 부분을 눈여겨가며 읽어야 하는구나, 지금 보니 새롭네, 이게 그 말이었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참 많았어요. 그래서 내친김에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을 하나씩 다시 읽기로 했습니다. 벌써 온라인 서점에 책 주문을 넣었어요. 딸 덕에 제가 책 읽는 눈이 한층 깊어질 것 같아요. 의외의 소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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