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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n 11. 2022

오늘부터 열심히 볶도록 하겠어요.

주전에 Y는 대학시절 늘 붙어 다니던 나와 몇몇 친구들을 집들이에 초대했다. 집들이이지만 가족들이 쉬는 주말에 친구의 집에 오래 머무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집 구경만 잠깐 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지난 2월에 이 친구들이 우리집 집들이에 왔을 때, 간단히 집 구경을 한 후 근처 닭갈비집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던 것처럼 하기로 한 거다. 그런데 방문하기로 한  이틀 전에 Y가 집에서 밥을 해주겠다고 했다. 주말에 수고롭게 그러지 말라는 우리에게 아들 녀석한테 늘 해주는 파스타를 간단하게 만들어줄 테니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간단하게 파스타만 비벼준다던 말과는 다르게 Y는 파스타 풀코스 요리를 내어주었다. 따뜻한 식전 빵과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를 넣은 닭가슴살 샐러드, 크림소스와 라구소스로 맛을 낸 두 종류의 파스타, 손수 짜낸 사과즙을 넣은 패션푸르트 주스와 새콤달콤한 피클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한상이 나왔다.


 "야, 이게 다 뭐냐, 뭘 이렇게 많이 했어?"

 "간단히 해준다며 너 너무 고생하는 거 아니야?"

 "아니, 아들한테 해주는 정도로만 한다며, 이렇게 매일 차려주는 거야? 네 아들 정말 호강한다. 얘"


이렇게 한 상 차리고 나면 녹초가 되겠다고 했더니, Y는 "힘들긴,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밥 먹는 거 재밌잖아. 우리 엄마가 사람들 밥해주는 걸 참 좋아하셨어. 그래서 이런 일에 어려서부터 익숙해 있지." 라며 나를 보며 씩 웃었다. Y의 미소에서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읽혔다. 우리는 후식으로 에스프레소 기계로 갓 뽑은 신선한 아메리카노와 아이스크림 모나카를 먹으며 터질 것 같은 배를 움켜쥐고 Y의 정성을 칭송했고, Y도 우리도 모두 행복해했다.


그러고 보니, 대학 절친인 우리들 중에서 집에서 밥을 대접한 친구는 Y가 유일했다. 대학시절에는 Y의 어머니께서 우리를 불러서 맛난 음식들을 챙겨주셨고, Y가 결혼 한 뒤에는 우리들을 집으로 불러 종종 밥을 차려주었다. 식사를 대접받을 때마다 Y가 우리를 생각하며 준비한 고운 마음이 느껴져서 늘 감동했다. 어머니에게 좋은 유산을 물려받은 Y가 부러웠다.


집에서 음식을 대접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초대자는 메뉴를 정하여 음식을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을 때까지 손님의 취향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된다. 오롯이 손님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시간을 쪼개어 손님을 위해 쓰는 초대자의 마음이 참 곱다. 그래서인지 준비한 음식이 손님의 입에 맞기를 바라며 맛있게 먹어주는 것에 기뻐하는 초대자와 시간을 내어 음식을 준비한 정성을 아는 손님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배려라는 긍정의 에너지가 생성된다.  후덕한 대접을 받은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호의를 전해주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이번에는 내가 그러했다.


나에게 식사대접이란 웬만하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 일어난다면 어떻게든 빨리 해치워버려야 할 일인데, Y네 집에 다녀오고 나서는 나도 친구들을 불러 손수 만든 무언가를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Y가 보여준 정성과 마음씀에서 내가 친구들을 섬세하게 대하지 못했음을 발견하고 바꿔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한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내 시간에 맞춰 약속을 잡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고, 음식 솜씨가 없다는 이유로 집에 초대하고서도 밖에서 사 온 음식으로 대충 대접했었다. 약속 날짜는 서로를 좀 더 헤아려서 잡고 신선한 과일과 향긋한 차 정도는 집에서 먹자고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미안했다.


날을 한번 잡아야겠다. 추석을 보낸 뒤 명절 뒤풀이를 우리집에서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 메뉴는 그래, 김치볶음밥으로 하자. 짭짤한 햄과 잘 읽은 배추김치를 쫑쫑 썰어 넣고 후루륵 볶아내는 김치볶음밥은 그래도 내가

 는 요리이다. 어떤 는 김치볶음밥은 요리가 아니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밥 위에 계란 프라이도 무심하게 하나 얹고 심심하지 않게 방울토마토를 넣은 샐러드도 준비해야겠다. 음식솜씨는 분위기를 거들 뿐, 식사대접 여부를 좌우하는 요소는 아닐 거다. 이번 주부터 일요일마다 김치볶음밥 볶기 연습을 하리다. 추석 때까지 볶고 볶고 또 볶으면 얼마나 더 맛있어지려나 기대해 본다. 얘들아, 기다려라. 우리 추석 때 보자. 김치볶음밥 한판 거하게 볶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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