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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l 02. 2022

은퇴하면 놀아야 하는데

남편 회사는 20년 이상 근속한 직원에서 은퇴 1년 전에 연수기간을 제공합니다. 그 기간 동안 출근하지 않고 공부를 하든 은퇴준비를 하든 띄엄띄엄 여행을 가든,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연수를 할지 말지는 당사자의 의사결정입니다.


내년 여름이면 은퇴하는 남편에게 회사에서 연수를 갈지 말지를 결정해달라고 했답니다. 남편은 이제 뭔가 해볼 만 한데, 앞으로 10년은 더 일 할 수 있는데 집에 가라고 한다면서 연수를 갈지 여부를 몇 주에 걸쳐 생각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선택사항이 아닌데(회사에서 놀라는데 무조건 놀아야죠!) 그 결정이 남편에게는 꽤나 큰 고민거리였나 봅니다. 다행히 남편은 올바른 선택을 했지요. 6월부터 놀기로요.


저와 비교해보면 남편은 참 재미있게 회사생활을 했습니다. '아이고 피곤해'를 입에 달고 다녔지만 일이 본인의 적성에 맞아서 재미있고 이 일을 선택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도 했어요. '재미없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저와는 아주 대조적이죠.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생계까지 해결할 수 있다니, 삼박자를 갖춘 제 남편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몇 주 전에 제가 휴가를 낸 어느 날 저와 남편은 집 뒤에 서울 둘레길로 이어지는 낮은 산으로 아침 산책을 갔습니다. 산책길에 남편이 한동안 여행을 떠났으면 하는 바람이 티 나지 않게 꼭꼭 숨기고 남편에게 뭐하고 놀지를 물어봤어요.


"쉬면서 뭐할 것이오?"

"은퇴 후 뭐할지 생각해야지."

"낼모레가 은퇴인데 너무 늦은 거 아니오?"

"늦었지만 어쩌겠소,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지."

"안 놉니까? 여행 뭐 그런 거 안 가오?"

"놀면 뭐해? 내가 해왔던 걸로 뭐 먹고살게 있는지 찾아봐야지"

"........"


제가 남편이면 보장된 1년 동안은 말 그대로 발길 닿는 대로 여행 다니며 놀고 또 놀 것 같은데요, 어찌 이런 재미없는 대답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다시 일할 궁리를 하는 남편의 마음은 모르고 남편 따라 쫄래쫄래 여행 다녀볼까 했던 제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같이 좀 놀고 싶은데.


은퇴가 가까이 오면 더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회사 선배도 제 남편처럼 은퇴할 때가 되니 통찰력이 생겨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더 오래 일하고 싶다고 하네요. 은퇴 시점에 일을 더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계속 일하고 싶은 아쉬움 때문인지 그 분야의 통찰력이 생겨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후자의 경우가 더 끌립니다. 한 분야에서 20년 이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전문성이 생겼을 것이니까 그즈음에는 뭔가 보여도 더 잘 보이고 뭔가 해내도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은퇴라는 제도가 전문성 살리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도 같고, 진짜 실력자라면 은퇴 후에도 어디든 불려 다닐 것이니 그들에게 은퇴는 큰 의미는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앞으로도 은퇴 후에 불려 다닐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은퇴를 앞둔 배우자를 보면서 드는 이런저런 생각을 그냥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먼 이야기라서 저도 아직 준비 못했지만 다들 어떤 은퇴를 준비하시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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