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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l 16. 2022

집밥(집에서 먹는 밥)

엄마는 음식 솜씨가 꽤 좋았는데 나는 아빠 쪽을 닮았는지 요리 솜씨는 말 그대로 젬병이다. 타고난 솜씨가 없더라도 오랫동안 음식을 만들면 구력이 생겨 좀 나아질 텐 데데 나는 경력도 일천하다. 요리책이나 간단한 요리방법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보고 흉내를 낼 줄을 알지만 맛은 보장할 수 없다. 만들 때마다 맛이 다르다. 하하하.


사춘기를 맞아 급격히 살이 불어나는 딸과 집에서 쉬면서 움직임이 줄어든 남편의 건강을 위해 지난주부터 주말 6끼는 모두 집밥을 해 먹겠다고 다짐했다. 시금치, 숙주, 콩나물, 애호박, 오이, 두부, 감자, 양파 등등 기본 재료를 구비하고 데치고 무치고 볶아서 나물 3개에 두부조림, 찌개 하나를 끓였다. 그리고 상을 차렸는데, 반응이 안 좋다.


“같은 재료, 다른 맛! 엄마, 큰 이모한테 맛있는 것 좀 해달라고 부탁해봐”

(참고로 우리 딸에게는 큰 이모인 나의 언니는 음식 솜씨가 꽤 좋다.)

“그냥 배달시켜 먹자. 마누라.”      


반찬을 만드는데 드는 시간은 2시간인데 여기에 쏟은 나의 힘과 정성은 온종일 쓸 에너지를 다 태운 것 같다. 겨우 두 끼 준비했는데 매우 고된 노동을 한 듯 온몸이 아프다. 무엇보다 고객의 반응이 너무 별로라 좌절이다. 이런 식으로는 나머지 식사를 다 준비하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하늘을 찌르는 가족의 원성은 집밥을 만들겠다는 나의 의욕을 떨어뜨리는데 일조를 했다. 이 정도 원성이면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 간편식으로라도 입맛을 맞춰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바로 동네 슈퍼의 냉동식품 코너로 갔다. 마트 냉장고에 착 달라붙어서 온갖 완조리, 반조리 식품을 골랐다. 불어나는 살과 건강에 대한 우려는 요리할 때의 피곤함과 가족들의 불만에 밀려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냄비에 넣어 끓이기만 하면 되는 반조리 차돌 된장, 냉동 떡갈비와 생선구이를 집어 들고 집에 돌아와 전자레인지에 돌려 접시에 담아냈다. 반조리식품임을 티 내지 않으려 아주 근사한 접시에 더 그럴듯하게 담아냈다. 백반집 밥처럼 식탁이 풍성해졌다. 달콤 짭조름한 반조리 식품에 홀린 남편과 딸은 만족스러워했다. 내가 직접 조리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바꾸고 나니, 준비한 나, 먹는 가족 모두 만족했다. 만족하면 다 된거다.


집밥, 엄마가 직접 만든 밥이 아니라. 그냥 집에서 먹는 밥이다. 다수의 여성들이 경제생활을 하는 요즘 세상에 가정 내의 여성에게 직접 만든 밥을 달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각자의 사정에 맞춰 집에서 밥을 해 먹으면 그게 집밥이지 꼭 엄마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조리식품을 활용하든 완조리식품을 접시에만 받아내든 상관없는 것 같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집밥을 해 먹었고 앞으로도 이렇게 요령껏 집밥을 해 먹을 거다. 용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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