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핸드폰을 사준 지 2년이 넘어가지만 딸은 내게 전화하는 일이 거의 없다. 처음 전화기를 딸에게 건네주고 딸과 알콩달콩 문자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하루에 서너 차례씩 하트를 뿅뿅 날렸었다. 딸도 내게 하트를 날려주겠지 하는 기대에 부풀어 답장을 기다렸지만 답문자는 3일 후에나 올까 말까이다. 친구와의 카톡에는 울리기가 무섭게 답을 하는 것을 보면 엄마의 카톡을 씹는 것 같다는 확신이 강해진다.
왜 엄마 전화를 잘 안 받고 문자에도 답이 늦냐는 나의 물음에 딸은 “바빴어” 또는 “진동이라 몰랐어”라고 기계처럼 답한다. 그럴 때마다 ‘감히 엄마 전화를 씹다니, 초등학생이 바쁘면 얼마나 바쁘냐? 진동이라 못 받았으면 확인한 다음에는 전화를 해야지 그건 핑계가 안되지요’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전화로까지 엄마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런 것이겠지 라며 입 밖으로 삐져나오는 불만을 꿀꺽 삼키곤 한다.
이렇게 딸에게 문자와 전화를 씹히면 기분이 참 묘하다. 어른이 아이한테 무안을 당한 것처럼 머쓱하기도 하고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차인 것 같은 속상한 기분도 들고, 아무튼 좀 그렇다.
며칠 동안 남편이 맡아하던 딸의 드림렌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월요일 오후에 긴급히 안과에 갈 일이 생겼다. 딸에게 월요일 영어 학원에 가기 전에 큰이모(나의 언니)와 같이 후딱 안과에 다녀오라고 했다. 간식 먹고 쉬는 시간에 병원에 가라고 한다고 딸은 꽤나 투덜거렸다. 아빠의 실수로 안과에 가게 된 것이 미안해서 언니에게 병원 다녀오는 길에 딸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주고 달래주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월요일 오후, 그렇게 전화를 안 하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최대한 사랑을 담뿍 담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와우, 따아아알~. 웬일로 전화를 다했어?”
“엄마, 오늘 나 간식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고 했어?”
“응. 그랬지.”
“그렇구나. 그거 확인하려고 전화했어. 평소 엄마 같지가 않아서. 알았어. 안녕”
“야, 근데 너.....”
“뚜뚜뚜......”
한 30초 정도 통화했나? 딸이 전화를 걸어줘서 너무 반가웠는데 이렇게 통화가 끝나다니, 딸에게 또 차인 것 같다. 내가 꿈꾸던 딸과의 다정한 전화통화는 언제쯤 가능할지 모르겠다.
딸의 일거수 일투족이 왜 이렇게 궁금한지 모르겠다. 아이 방 밖으로 흘러나오는 친구와 전화통화 소리를 들을 때는 혹시 친구와 싸우지는 않는지 궁금하여 귀가 부채만큼 커진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잘 자라고 인사까지 하고도 아이가 잘 자는지, 불끄고 핸드폰을 보는 것은 아닌지, 이어폰을 끼고 자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여 5분도 안되어서 "따아아알~ 자니?"라며 아이 방에 얼굴을 들이민다. "엄마 그만! 나 좀 혼자 있게 해 줘."라며 짜증을 부리는 딸에게 살짝 미안하기는 하지만 나는 손하트를 날리며 수시로 아이 방을 들락거린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남편이 내게 일침을 가한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면 아이가 멀리 도망간다고 그러지 말라고 한다. 외동인 남편은 어머니의 찐한 아니, 과한 사랑 때문에 일찌감치 유학을 결심했다고 했다. 한국에 있으면 영원히 엄마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마보이가 될 것 같아서, 성인이 되면 엄마 품을 떠날 생각을 중학교 때부터 가졌다고 했다. 그리고 유학 기간 15년 동안 한국에 발 한 번을 들여놓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을 품에서 빨리 떠나보내고 싶으면 지금처럼 하라는 엄포를 놓는다.
나도 안다. 아이와의 적당한 거리가 건강한 부모 자식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데 나와 딸 관계에는 적용이 안된다. 이론과 실제는 언제나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