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Aug 27. 2022

책은 아직 어렵다.

평론가의 해설이 필요한 책에 대한 불편한 심정

내가 참여하는 책모임에서 이번 달에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A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는 다수의 평론가로부터 순수하고 맑은 서사를 통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평을 받는 작가라서 많이 기대하면 읽었는데, 의외의 경험을 하게 되어 오늘은 그 감정을 한번 풀어볼까 한다.


보통 책을 읽고 나면 인상적이거나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는데, 이번 책에서는 인상적인 구절을 찾기가 어려웠다. 내가 잘못 읽었나 싶어서 책을 한번 더 읽었지만, 인상적인 구절은 나오지 않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 더 선명해졌다. 아직 숙련된 독서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아무리 골똘히 생각을 해도 나는 작가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작가의 의도에 대해 감조차 안 오는 경우는 처음이다.


책을 추천한 분이 마지막 단편을 읽고 펑펑 울었다고 했는데 나는 별로 슬프지 않았다. 울만큼 슬픈 부분이라고 하면 등장인물이 멀리 떠나고 그의 할머니가 그 인물을 그리워하는 부분인 것 같은데 그게 펑펑 울 일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분은 왜 울었을까? 내가 공감능력이 떨어지나? 감정이 너무 메말랐나? 나중에 멀리 떠났다는 그 인물이 사고로 죽은 것이라고 설명해주는 평론가의 해설을 보고, 추천한 분이 울었다는 게 이해가 되었다. 근데 소설에 어느 부분에 그 인물이 죽었다고 적혀있지? 죽었다고 쓰지 않더라도 독자가 죽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표현이나 상황 묘사가 있었나?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잘못 읽었나?


내가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책모임에서 마지막 소설의 등장인물이 죽었다는 직간접적 표현이 소설에 나와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어떤 이는 추측할 수는 있지만 한 번에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다고 했고, 다른 이는 나처럼 평론가의 해설을 보고 알았다고 했다. 펑펑 울었다는 책 추천자는 등장인물이 겪은 사고가 세월호 사고여서 더 슬펐다고 했다. 소설 어디에도 세월호 사고라는 말은 없었고 단지 죽은 등장인물이 기간제 교사였다라는 서술이 있었는데, 책 추천자는 이 점과 소설이 발표된 시점이 세월호 사고 발생 직후라는 점을 들어서 그 사고가 세월호 사고라고 단정했다.


뭐야, 책을 남의 해석을 통해서 이해해야 하나? 뭐가 이렇게 불친절하지? 갑자기 평론가의 해설이 없으면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독자를 문학하는 이들의 해석을 거쳐야만 하는 무리로 보는 것 같아서 불편해졌다. 모임 참여자 한 분은 읽는 이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것이 소설이라면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조금 덜 불편하지 않겠냐고 한다. 맞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평론가의 해설을 거쳐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평론가의 해설이 들어가는 순간 독자 개개인의 해석은 오염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독자의 다양한 해석이 자리할 공간이 점점 줄어들 거다.


책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참을 떠들고 나서 남은 앙금을 이렇게 글로 풀어 보았다. 다 쓰고 보니, 어려운 소설을 해설 없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족한 나의 능력에 실망하여 퍼부은 못난 하소연 같아 많이 부끄럽다. 이 또한 숙련된 독서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여겨야 할 것 같은데, 당분간은 평론가를 빌어 독자를 이해시키는 작가들과 친해지기는 힘들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전화 짝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