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Sep 10. 2022

어쩐지 그럴 리가 없지

일복 많은 사람은 한 해도 쉽게 가지 않습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개인별로 1년에 과제를 4개씩 하도록 한다. 과제는 혼자서 수행하는 게 보통인데, 올해는 신기하게 4개 중 2개가 공동과제로 추진되고 있고 그중 하나는 내가 과제 책임이 아니다. 매해 빡빡하게 일하던 내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어서 낯설기도 했지만 속마음은 완전 신났다. 마음에 여유가 넘쳐 봄에는 야근도 좀 줄이고 집에서 업무자료도 가능하면 꺼내지 않고 있다. 점심시간에도 앉아서 보고서를 작성하던 내가 회사 체육관에서 살금살금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일복이 많은 것인지 일하는 속도가 느린 것인지(어쩌면 둘 다 일지도) 나는 늘 일이 많았다. 개인과제뿐 아니라 팀 총괄과 팀장 보조 역할까지 하고 있어서 더 그렇다. 근본적인 원인은 나의 팀장이 다른 팀장들보다 내게 선임자로서의 역할을 더 많이 부여하는 데 있다. 나와 동일한 위치에 있는 다른 팀의 선임들은 개인과제와 팀 총괄업무를 8대 2 정도로 한다면 나는 거의 5대 5에 육박하고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9월부터 11월 사이에는 비중이 4대 6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총괄업무를 잘 배워야 승진에 유리하다는 팀장의 배려이지만, 남들보다 개인과제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하고 특히 과제 마감 시간에 쫓길 때는 가끔 화가 난다.


지난주, 우리 팀의 허리 역할을 하던 A가 승진하여 다른 팀으로 갔다. 나는 당연히 A를 대신할 신입을 뽑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팀장이 그 자리를 다른 업무를 할 사람으로 채용할 거라 한다. 그러면서 A가 하던 일을 몽땅 내게 맡겼다. 내가 맡은 분야와 A가 하던 분야가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고 향후 두 영역이 통합될 것이라고 본다면서 말이다. 다행히 10년 전쯤 내가 A에게 물려주었던 업무라서 어떻게 할지는 대략적으로 그려지지만, 두 사람이 하던 일을 혼자 담당하라고 하니 몹시 당황스럽다. 전문분야를 두 개 이상 가지고 있어야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팀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늘어날 일의 양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맡긴 업무는 대체로 군말 없이 하는 편이지만, 지금부터는 적절하게 거절하는 단호함도 보여야 할 것 같다. 물론 지금보다 더 집중력을 발휘하다가 안될 때 그리하겠다는 말이다.  


후임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는 다른 팀장들에 비해 일을 가르쳐 주겠다는 사수를 만난 것은 고마운 일이니 좋게 생각하라며 동기가 위로의 밥을 샀다. 맞는 말인데, 솔직히 당장 드는 마음은 '정말 일 맡기 싫다'이다. 회사의 창립멤버이자 가장 연차가 높다는 이유로 중요한 업무에서 늘 빠지지 않은 게 17년째, 그냥 나는 일복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팀장이 나한테 일을 몰아주는 것을 보니 나를 엄청 믿나 보다고 위로하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과부하 상태로 일을 해왔다. 조금 여유롭게 아니, 긴장을 좀 풀고 일하고 싶은데 올해도 아닌가 보다.


올 초에 일이 좀 적다 싶어서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을 살짝 는데, 방정맞게 괜히 그런 생각을 해서 하반기에 일이 이렇게 몰려오는 것 같다.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아직 긴장을 풀 때가 아닌가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8월까지 조금 더 쉬엄쉬엄 일할 걸, 갑자기 지난 시간에 더 힘껏 놀지 못한 게 아쉬워진다.



.



작가의 이전글 이렇게 또 나와 싸워 이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