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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열심 Jun 15. 2022

서른을 마주한 우리

인터뷰를 시작하게 된 건에 대하여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피하며 살아왔던 건 아닌데, 너무나 치열했던 이십 대를 지나 서른을 맞이했다. 남들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왔던 이십 대였기에 서른이 되면 나이에 걸맞은 능력을 가진 당당한 개인으로 성숙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남들은 맞이하기 싫다는 서른이라는 숫자가 나는 꽤나 반가웠고, 남들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선 나름대로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마주한 서른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채 중구난방으로 치열했던 이십 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나름대로 잘 쌓아왔다고 생각하던 경력도 왠지 물경력처럼 느껴지곤 했다. 서른이 다가오자 더 이상 나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사라졌다. 지금까지는 정해진 길을 따라갔으니, 앞으로는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고 하며 갑작스레 무인도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는 처음 보는 것들에 발을 살짝 담갔다가도 익숙하지 않아서 혹은 멀게만 느껴져서 어려울 것이라며 지레짐작하고 금세 발을 빼게 되었다. 오랫동안 다양하게 도전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이십 대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여유가 사라졌다. 눈앞에 다가온 서른이라는 숫자가,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던, 생경할 것이라 착각했던 그 순간과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이 부족했길래 나는 여전히 스무 살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서른 살을 맞이한 걸까? 개똥벌레처럼 바쁘게 굴려왔던 일상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잠시 일상을 멈춘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데, 어떤 게 행복한 삶일까?


지나왔던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에게 중요한 것, 인상 깊었던 것,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직업일까 아니면 능력? 인간관계?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나의 삶을 구성하는 것들을 하나 둘 되짚어봤지만 해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한 번 더 마음에 물었다. 나는 왜 열심히 살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였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어디에 있었던 거야? 수많은 질문을 던졌음에도 마땅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항상 시작할 때 분명한 이유를 두고 나를 설득하며 일을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늘 목적지를 쉽게 정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나의 과거조차 희미하게 만들어 나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모호한 결과물을 들고서 방향을 선택하려고 하니 앞으로 나아가기 망설여졌다. 무엇보다 선택지가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많은 가치와 방향을 놓고 선택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꼬리에 꼬리를 물던 질문을 던지다 보니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저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지?


나는 네가 궁금해.


 가장 먼저 나와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공유한 친구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가까운 사람들의 코어에는 어떤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을까? 그들과 대화를 통해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며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만약 그들이 아직 고민하고 있지 않았다면 대화를 통해 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던지던 질문을 내가 아닌 서른 살 그 언저리에 있는 지인들로 바꾸고 나니, 정체되어 있던 생각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나와 그들의 고민이 같을지 아닐지는 몰랐지만, 가장 먼저 내가 가장 고민했던 '서른'과 '행복'이라는 주제를 떠올렸다. 먼저 '서른'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그들의 현재와 서른, 그리고 미래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업에 대한 생각,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관계나 취미생활, 그리고 그들이 요즘 갖게 된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들이 서른, 그 너머의 미래를 그릴 때 지향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다.


다음으로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생각해 보았다. 내가 처음 행복이라는 주제를 놓으며 생각했던 질문들을 그대로 나열했다. 행복이 무엇인지, 친구들에게 행복은 무슨 가치를 지니는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등. 굉장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스스로에게 행복한가를 묻는 질문들을 건네고 싶었다. 행복했다면 그러한 경험은 회상만으로도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있기에, 그들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며 행복을 되새김질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고민을 두 가지 키워드와 연결시키다 보니 질문이 꽤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너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 어떤 미래를 꿈꾸며 살아? 너의 행복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니?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며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참 많아졌다.


너를 조명하려고 해.


친구들에게 던질 질문들을 먼저 결정하고 나니 부차적인 고민들이 떠올랐다. 어떤 수단으로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누구를 대상으로 하면 좋지? 어디서 진행하면 좋을까 등.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들게 되는 질문들이었다.


가장 먼저, 인터뷰를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에 여행을 다니며 나의 감정과 경험에 대한 생각을 인터뷰로 찍곤 했다. 돌이켜보면 여행에서 찍은 수많은 영상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찾는 영상이 인터뷰였던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했던 고민과 생각, 감정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는 그 영상들을 보면서 나는 그 시절을 빠르게 회상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에 참여할 친구들의 현재의 생각을 기록하고, 어떤 방향으로든 채워졌을 감정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콘텐츠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한편으론 영상으로 제작되는 일이기에, 친구들도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며 답변을 준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시간이 그들에게도 미래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하는 기회를 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 유튜브 영상을 즐겁게 봐주는 친구들에게 인터뷰가 오랫동안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의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대상을 정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모두 초대하기에는 재정적인 그리고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았다. 더욱이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선물이 되려면, 그들도 참여 의사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두 가지 관점에서 고려했다. 첫 번째는 내 유튜브를 재미있게 시청하며 피드백을 주는 친구들이어야 했고, 두 번째는 내가 전하고 싶은 가치를 가진 사람이어야 했다. 유튜브에 얼굴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지인들 중에서 촬영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 결과 대상이 약 12명 정도의 인원으로 추려졌던 것 같다. 그래서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고 나를 믿기에 함께 촬영해 주는 친구들 덕분에 영상 제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영상을 제작하는 나와, 영상에 참여하는 지인들 그리고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고민하는 부분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영상 한 편에 한 개 이상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지인들의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촬영 환경에 대한 고민을 했다. 평소 지인들과 만나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다 보니, 평소와는 다른 환경을 마련하고 싶었다. 특히 소음이나 시각적인 자극,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인터뷰이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외부요인이 적은 공간을 찾고 싶었다. 또 누군가 다른 화자가 있거나, 지켜보는 이가 있는 경우 긴장해서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둘이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전 답사를 하기에는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공간 대여 플랫폼에 올라온 사진을 보며 그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혹은 그들과 분위기가 유사한 장소를 물색했다. 비용이나 거리 상의 이유로 미처 충족하지 못한 장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장소에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서의 관계에 몰입하기에는 충분할 것 같아 보였다.


프로젝트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


 사실 모든 과정을 기획하며 가장 초점을 맞췄던 것은 '메시지'였다. 내가 나의 고민을 시작으로 한 프로젝트이지만, 그럼에도 인터뷰에 참여할 사람들, 인터뷰를 보게 될 사람들 그리고 인터뷰를 제작하는 나에게도 의미가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각각의 대상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를 보다 깊게 고민해 보았다.


가장 먼저 인터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자신의 시간과 고민을 나에게 내어주는 만큼 본인의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길 바랐다. 평소에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하며 생각을 견고하고 단단하게 자리 잡길 바랐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에 그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 '나의 현재'를 파악할 수 있는 어떤 기록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다소 개인적이더라도 인터뷰이들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질문들을 선정했고, 질문 자체로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최소화했다. 다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깊이가 필요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인터뷰 중간중간 추가 질문을 던지는 등 나의 역량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다음으로 인터뷰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다양성을 보여주되, 보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나의 고민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비슷한 고민을 갖게 된 또래들이 영상을 보며 나름의 공감을 받았으면 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니 유사한 나이 대의 성공담을 전해 들으며 압박 아닌 압박을 느끼게 된 순간들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에는 그들의 행복과 가치가 내 것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에 직면했을 때, 인터뷰를 보면서 그들의 행복과 가치가 나의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위로받길 바랐다. 각자의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과 가치를 통해 행복의 다양성, 가치의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제작하고 진행하는 나에게는 '고민의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개인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다양성을 담아 가다 보면 나의 고민에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른'과 '행복'에 대해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과 가치가 더욱 많아질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주저하고 머뭇거리던 일상에, 다양한 경험을 심어주고 싶었다. 친구들과 대화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나의 역량을 활용하고, 기록하고, 드러내면서 활용하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또 서툰 순간이 너무나 불편했던 나에게 '처음'의 기록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너무나 많은 마음과 생각이 모여 인터뷰를 시작하게 됐다. 사실 목적이나 주제가 더욱 뾰족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는 것 아니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초심자에게 주어지는 어떤 행운처럼, 서툴고 부족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솔직하게 그려질 인터뷰를 기대하고 있다. 객관성을 입증하기 위한 질문들보다는 내가 궁금하고, 알고자 하는 것들에 보다 초점을 맞춰 경험과 과정을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기록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글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경험한 생각과 마음을 앞으로 브런치에 연재하려고 한다. 글이 쌓이고 쌓여 어떤 인사이트를 얻을 때 즈음 나는 또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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