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열심 Jun 22. 2022

충분히 그 평화를 누릴 자격이 돼.

평화주의자 INTP 감자와 나누는 대화, 서른을 마주한 우리 [1회]


 서른을 마주한 우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심한 후 가장 먼저 만난 친구는 감자였다. 감자는 오랜 친구인데, 대화를 나누다가 인터뷰에 대한 기획을 소개했더니 자신도 참여하고 싶다며 선뜻 참여의사를 밝혀왔다.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던 중이었는데, 얼떨결에 속도가 붙어 감자와의 대화를 기점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됐다. 어찌 보면 프로젝트의 방아쇠를 당겨준 일등 공신이다.


먼저 감자에 대해 소개하자면, 감자는 전국 팔도에 떡볶이를 먹으러 여행을 다닐 정도로 떡볶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편 사진을 찍는 감각도 출중해서 그의 사진을 보면 여행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솜씨가 좋다. 한 가지를 더 덧붙이자면 제주를 워낙 제 집 드나들 듯 빈번하게 왕래를 하곤 해서 제주에 대해 모르는 점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 감자와 5월의 어느 화창한 봄날, 한 스튜디오 앞에서 만났다. 점심으로 함께 떡볶이를 먹을 때까지만 해도 서로 긴장한 기색이 없었는데, 스튜디오에 들어가니 괜히 떨렸다. 자리에 앉으니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자세가 꼿꼿해졌다. 나란히 앉은 감자와 긴장을 푸는 와중에도 대화를 잘 이끌어야 한다는 묘한 부담감이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긴장감이 나의 태도를 지배하지 않도록 가벼운 질문으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감자씨, 왜 감자로 닉네임을 정하셨어요?"


감자가 곧바로 답했다.


"제 학창 시절 때 별명이 감자이기도 하고, 블로그 이름도 감자라서요. 제일 처음 블로그를 만들 때 감자를 먹고 있어서 감자라는 블로그명을 설정했는데, 그걸 닉네임으로 가져오게 됐어요. 그리고 나이는 29살, MBTI는 INTP 입니다."


왠지 그 답다고 생각되는 네이밍이라서일까? 감자의 대답을 들으니 긴장이 한결 사그라들었다.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첫 번째 코너인 '요즘 너는 어때?'라는 코너를 소개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비행기 티켓을 끊고 그날까지 기다리는 게 유일한 낙이 아니었나 싶어요.'


Q. 감자씨가 요즘 가장 관심 있어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감자 : 여행이나 놀러 다니는 것에 제일 관심이 많은데요. 제가 최근 주 6일제로 근무 형태가 바뀌었어요.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단 하루만 쉬는데 서울에 나가서 노는 것은 별로 쉰다는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산이나 바다로 놀러 가고 싶기도 하고, 요즘에 해외여행을 많이 가는 걸 보니까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요.


Q. 여행을 맨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감자 : 제가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뭔가 그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저한테는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여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 놓고 그날까지 기다리면서 살고. 그런 게 그때의 유일한 낙이 아니었나 싶어요.


Q. 감자씨가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감자 :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날씨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더라구요. 그래서 날씨가 좋으면 기본적으로 기분이 좋은데, 일을 쉬는 날에는 기분이 좋은 것 그 이상이 되더라구요. 최근에 날씨가 굉장히 좋았잖아요. 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요가를 하러 갔는데, 그날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요가를 하는 내내 기분이 좋고, 요가 끝나고 나서도 쉬는 날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저는 좀 그런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편인 것 같아요. 날씨가 좋은 것, 그리고 좋아하는 와인바에 가서 와인 마시는 것, 그리고 남자친구를 만나도 기분이 좋고, 뭐 그런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요.


Q.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만족감은 어떤 편인가요?

감자 : 저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외에는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 일인지 사실 그다지 모르겠긴 해요. 제 생각에는 다른 분들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약간 생계를 위한 돈벌이 수단? 그냥 그 정도?


Q. 서른이 주는 부담이나 고민이 있는 편인가요?

감자 : 저는 제가 굉장히 어리다고 생각해요. 서른 살도 굉장히 어리다고 생각하고. 저는 나이에 대해서 중압감을 받거나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항상 '나는 어리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자의 대답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환경 속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찾고, 소소한 것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태도가 감자가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사는 것처럼 보였다. 힘들 때 가까운 곳에 행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했던 경험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데, 감자에게는 가까운 곳에 행복이 놓여져 있는 듯했다.


다음으로는 '어떤 미래를 꿈꿔?'라는 코너를 통해 질문을 던졌다.


'오늘은 하늘이 파래서 쉽니다.'
- 주인 감자 백 -


Q. 요즘 직업에 대한 변화가 굉장히 많은 시기인데,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감자 : 사실 제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일이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일에서 기쁨을 느끼고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분들이 오히려 되게 부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약간 극단적일 수 있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출근을 하면서 차에 치이고 싶다는 생각만 들지 않으면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감자 미래에 하고 싶은 /삶은?

감자 : 미래에 하고 싶은 일? 저는 조금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데요. 나중에 언젠가는 제주도에서 와인바를 열어서 일도 적당히 하고 돈도 적당히 벌면서 살고 싶어요. 제주도에 가면 그런 거 있잖아요. '오늘은 하늘이 파래서 쉽니다.' 뭐 이런 거? 이런 걸 한 번 해보고 싶어요.


Q. 혹시 롤 모델이 있다면 소개해주시겠어요?

감자 : 저도 열심님의 질문을 받고 생각을 해봤는데요. 사실 평소에 생각했던 롤모델은 없어서 누가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까, 제주도에 제가 아는 분들 중에 술집을 운영하시는 부부가 계세요. 그분들이 평소에는 본업을 열심히 하시고, 일 년에 한 두 달 정도는 해외로 여행을 가시는데요. 그분들이 나이가 50대가 이미 훌쩍 넘으셨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두 분이서 여행을 다니시고 그런 모습을 보니까 부럽고 좋더라구요.


Q. 감자씨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감자 : 제가 예전에 여행을 가서 감정카드로 진행되는 마음의 대화 프로그램을 했던 적이 있어요. 설명을 하자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닥쳤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카드를 선택하는 거거든요? 카드를 선택한 후에는, 내가 이런 감정을 느꼈을 때 필요한 감정을 다시 생각하고, 마지막에 나온 카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저는 거기서 '존중, 평등, 평화' 이 세 가지 카드가 나왔어요. 그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시는 호스트님께서 되게 여러 해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는데, 평화라는 카드가 나온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다고 하더라구요.


Q. 그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어땠나요?

감자 :  '아, 나는 굉장히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요. 사장님 얘기를 들어보니 보통 명예 같은 게 나온대요. 근데 저는 명예나 돈보다는 내 마음 편한 게 최고인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저는 그냥 뭔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마음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인 것 같아요.


감자의 대답을 들으며 감자가 그리는 미래를 상상해보았다. 제주에서 여유롭게 일상을 즐기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비슷한 시절을 보내서 일까? 비슷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안에는 감자가 추구하는 '존중, 평등, 평화'가 녹아있는 듯했다. 내 상상 속의 감자처럼 미래의 감자가 편안한 마음으로 웃고 있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다음으로는 감자와 함께 INTP MBTI Bingo를 맞춰보는 시간을 가졌다.


'집에 돌아와서 하루 종일 생각만 했어요.'


Q. 감자씨는 '몽상가'인가요?

감자 : 몽상가? 어... 약간 세모 같아요. 옛날에는 되게 몽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많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진짜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누워서 그냥 생각만 했어요. 예전에는 다른 아무것도 안 하고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Q. 슈퍼 솔직, 감자씨 생각은 어때요?

감자 : 솔직해요. 요즘은 솔직하게 할 때는 하는 데 굳이 안 해도 되겠다 싶으면 안 하는 편이에요. 근데 뭐 살살 돌려서 말하긴 하지만, 아예 없는 말은 하지 않아요.


Q. '끝없는 의심', 감자씨는 의심이 많은 편인가요?

감자 : 저는 의심을 할 만한 사람이 없어요. 애초에 남한테 그렇게 관심이 없는 편이에요. 굳이 의심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도 약간 저 같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라서요.


감자와 함께 풀어본 INTP 빙고는 0 빙고가 나왔다. 빙고의 결과만 본다면 감자가 INTP이 맞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만 빙고를 풀면서 '예전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며 대답하는 감자를 보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성향이 주변의 환경 혹은 사회생활로 인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을 16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 어때?' 코너를 진행했다.


충분히 그 평화를 누릴 자격이 돼.
- 29살의 감자가 39살의 감자에게 -


Q. 감자씨 혹시 5년 후 or 10년 후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감자 : 5년 후는 너무 짧은 것 같고 10년 후로 생각을 해봤는데요. 10년 후의 나는 아마 지금보다는 훨씬 더, 제가 인터뷰에서 쭉 말했던 것처럼,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10년 후의 감자에게 네가 지금 갖고 있는 평화로움은 결코 그냥 얻어진 게 아니라, 내가 20대에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평화를 갖고 있는 거라고 얘기를 해주고 싶고요. 충분히 그 평화를 누릴 자격이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Q. 제가 오늘 질문을 많이 드렸는데요. 혹시 저에게도 궁금하신 점이 있나요?

감자 : 저는 사실 완전 열심님이 저랑 반대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집에 있는 것 좋아하고, 약간 좀 내성적이고, 가만히 있는 것 좋아하고 그런 사람인데, 열심님이 진짜 말 그대로 열심히 살거든요. 열심님 진짜 열심히 사시는데 그러한 원동력이라던지 이런 게 좀 궁금한 것 같아요.


열심 : 일단 열심히 사는 이유를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원동력에 대한 답변을 드릴게요. 저는 제가 뭔가를 열심히 하고 살아왔을 때랑 그렇지 않았을 때의 결과물에 대한 감동이 다른 것 같아요. 제가 가볍게 얻은 것은 가치가 저에게 낮게 느껴지기 때문에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는 나 자체를 좋아하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들이 누군가의 인정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인정을 받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런 점이 또 저에게 원동력이 되어주고 열심히 살게 되는 어떤 동기부여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Q. 앞으로 어떤 분의 인터뷰를 보고 싶나요?

감자 : 제가 열심님한테도 한 번 얘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저는 사실 정말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열심님을 만나면 '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열심님 같은 분들이 제일 궁금한 것 같아요. 주변에 보면 정말 잘 없는데 가끔 정말 열심히 사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이 진짜 제일 궁금한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감자 : 느낀 점은 생각보다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빙고를 보면 또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냥 열심님이 이런 자리를 준비했다는 것 자체가 되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감자의 10년 후 한 마디가 정말 감동적이었다. 감자가 '너는 그럴 자격이 돼'라고 미래의 감자에게 말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20대를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아온 흔적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한 편으로는 나도 나를 늘 응원해주는 든든한 응원군인 감자가 10년 후 지금보다 더욱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길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빠른 속도로 첫 번째 인터뷰가 끝났다. 가장 먼저 진행한 인터뷰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적었고, 요령이 없다보니 적절한 타이밍에 질문을 잘 던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파생되는 질문이 수도 없이 많았다. 감자가 좋아하는 떡볶이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점도 참 아쉬웠다. 다만 이런 아쉬움을 밑거름 삼아 다음 인터뷰에서는 보다 좋은 가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겠다는 배움이 있었다. 특히 도전에 대한 내용이나 몰입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첫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다. 질문을 던지는 것뿐인데도, 감자의 생각과 경험이 나에게로 전해지는 듯했다. 오늘 경험이 다음의 인터뷰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 그리고 깊이있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 덕분일까. 한 번의 경험일 뿐이지만, 경험이 쌓이니 다음 인터뷰가 기다려졌다. 다음 인터뷰에서는 여러 다른 질문을 통해 또 어떤 인사이트를 쌓을지 기대가 된다.


이전 01화 서른을 마주한 우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