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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언화가 Mar 29. 2023

메멘토 모리

죽음이 스쳐 지나간 하루

매일 1시간 30분에 해당하는 거리를 출퇴근하고 있다. 다행히 통근 버스가 있어서 통근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각이 6시 50분. 그렇게 서둘러 나서도 학교에 도착하면, 8시 20분이 된다.


출퇴근이 길어지며,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주로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로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다. 세상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세상을 향한 욕심이 생긴다. 지난 월요일도 그런 욕심에 도취되어 가고 있었다. 월요일의 주된 생각은 부동산이었다. 부동산이 하락장이라는 영상들, 그 하락장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말들. 뭔가 시대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하면 낙오될 것 같은 말들... 그렇게 점점 그들의 말에 빨려 들어갈 때쯤 갑자기 버스가 "퍽"소리와 함께 들썩였다. 흔들렸다가 아닌 들썩였다.


차가 들썩였으나, 기사님은 아무 일 없는 듯 운전을 이어갔다. 버스에 탄 사람들도 잠깐의 놀람을 뒤로하고, 조금 전에 하던 것들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조용한 버스 안의 공기가 그대로 유지됐다는 거다.


잠시 뒤, 첫 번째 하차가 있었다. 첫 번째 정류장에서 내려야 할 사람들이 내린 뒤 경찰이 버스로 다가왔다. 버스 밖에서는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실랑이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경찰관 중 한 분이 버스로 올라왔고,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버스가 운행할 수 없다고 했다. 고속도로를 달려온 버스가 첫 정류장에서 갑자기 달릴 수 없다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내가 앉았던 자리의 바로 아래를 보며 버스 밖에서는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출근 시간을 생각하며, 얼른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내가 앉았던 자리 근처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안쪽으로 밀려난 바퀴의 흔적이 보였다. 흔적이라고 말한 것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는 바퀴의 끝자락만 보였기 때문이다. 뒷바퀴가 안으로 들어간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 출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질주. 바퀴의 각도가 약간만 틀어졌어도 죽음이었다. 혹은 버티지 못한 바퀴가 빠져버렸다면 그대로 버스는 균형을 잃고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을 것이다. 왜 낭떠러지냐고? 고속도로의 끝자락 톨게이트를 지나면 낭떠러지가 존재하는 길을 지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드레일이 있지만, 균형을 잃은 거대한 버스를 버틸만한 높이와 힘은 없어 보였다.


돌아보면 아찔하지만,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된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의 웃음이다. 어쩌면 15분 전에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 죽음의 순간에 부동산의 하락장을 보며 욕망의 덫에 빠져들던 내가 생각났다. 죽으면 사라질 것을 생각하며 죽는지도 모르고 끝나버리는 삶이라니.


너무 놀라운 일이라 가족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누구에게라도 이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욕구를 해결했다. 이후 정신없이 이어진 수업과 업무. 그렇게 지나간 오전. 퇴근 녘이 되어서야 아침의 일이 생각났다. 퇴근할 때의 버스는 다른 버스로 대체되어 있었다. 아마도 뒷바퀴가 망가진 버스는 공장에 들어간 거겠지.


아침에 건너온 길을 되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아침과는 조금 다른 생각에 잠겼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아침에는 웃었지만,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는 눈물이 났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향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수많은 영상매체를 접하다 보니, 내 생각이 아닌 세상의 생각으로 물들고 있는 나를 되돌아본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월요일의 경험이 내게 빠져나올 계기가 되어준 건 사실이다. 삶에 대한 자각을 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지금의 삶에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이 다섯 글자를 떠올려 보자. 메멘토 모리. 죽음의 순간에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행동의 방향이 과연 내게 유의미할 것인가. 바쁘다는 핑계로 3월 한 달간 뜸했던 일기장을 펼친다. 과연 내가 가는 방향이 내가 원하는 것인가. 그 방향을 매일 확인하는 것. 그것이 나의 나 됨을 지켜주는 힘이 되어 줄 것을 믿는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며, 진정 원하는 것을 바라보라. 나에게 메멘토 모리는 이런 뜻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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