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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언화가 Apr 17. 2023

청소가 필요해

매일매일 구석구석

점심시간.

급식을 먹고 교실로 들어간다. 오늘의 청소 당번 중, 급식을 먼저 먹은 아이들이 교실 청소를 거의 끝내 놓았다. 빠르게 급식을 먹은 아이들의 목표는 청소 후 재밌게 뛰놀기다.


교실로 돌아온 나는, 걸레를 빨러 화장실로 향한다. 대걸레는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빨아온 걸레를 밀대에 붙인 뒤, 교실 구석구석을 닦는다. 매일 하는 일임에도 어김없이 걸레에 먼지가 가득하다. 처음에는 의아했던 일들이 이제는 익숙하다. 오히려, 먼지가 얼마 없는 날에는 청소를 잘하지 못한 것 같아 뭔가 꺼림칙하다.


집으로 돌아와 구석구석을 닦는다. 문을 열고 나간 것도 아닌데, 어김없이 먼지들이 보인다. 신기하다. 매일 하는 일임에도 매일 생기는 먼지라니. 분명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새 까맣게 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까맣게 변해버린 하얀 걸레를 보며, 지난 토요일 받은 건강검진이 떠올랐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속이 메슥꺼운 날들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럴 수 있겠다. 그냥 빈속이라 그러겠지. 그런데, 반복되는 메슥거림이 이상했다. 이렇게 불안해하느니 검진을 받기로 했다. 병원을 예약하고, 주말을 맞아 검진을 받았다. 빠른 결과를 원했고, 비수면으로 위내시경을 했다. 다섯 번 정도 웩이라는 말을 입에 달았고, 눈에서는 물줄기가 또르르 흘렀다. 그렇게 위내시경이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죽을병이라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즐기기보다는 질기게 산 인생 같아서. 다시 생이 주어진다면, 조금 더 즐겁게 만사 어떻게 되든 오케이로 살아보겠노라 다짐했다.


잠시 뒤,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진료실로 들어가니, 모니터에 나의 위가 적나라하게 떠있었다. 한눈에 봐도 깨끗한 위다. 의사 선생님께서 속이 안 좋은 것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이유가 있다면, 심리적일 거라고 했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면, 그 원인이 되는 걸 없애보라고 하셨다. 없앤다. 청소를 하듯 스트레스를 없애는 것이다. 생각과 다르게 너무도 건강한 위의 존재감을 깨닫고 병원에서 나왔다.


까맣게 변한 하얀 걸레를 들고, 깨끗한 내 위를 떠올렸다. 더불어 스트레스로 얼룩진 나의 정신도 잊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며,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많았던 요즘이라 스트레스가 더 심했나 보다. 보이지 않고, 잘 느끼지 못해서 그렇게 심하게 스트레스가 쌓였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깨끗하게 닦인 방 한가운데에 가만히 누웠다. 유튜브를 켜고, 혼자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을 적당한 크기로 맞춘 뒤 귀옆에 놓는다. 흥얼거림과 함께 아무런 생각도 안 하는 순간. 그런 짧은 순간을 갖는 걸 오래도록 잊고 있었다. 10분의 청소가 교실과 방을 깨끗하게 만들 듯, 10분의 여유가 삶을 살아갈 맑은 정신을 선물한다. 10분이 뭐라고, 바쁘다는 핑계로 내 마음 닦아주기를 잊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마음을 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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