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지킨다는 일

by 그냥사탕

집에서 책을 보고 있다가 아들의 귀가를 맞이했다.

우리 집에서는 가족 중 누구라도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이 열리는 순간 'XX 왔다~!'를 소리치며 달려가는 중요한 시간이다. 아빠도, 엄마도, 아들도, 딸도... 모두 해당되는 사항이고 이제는 무언의 규칙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집을 들어서는 이들의 반응은 일반적으로 비슷하다. 기쁘게 인사받아주기.

그러나 예외는 있다. 보통의 초등 남아들이 그렇듯 우리 집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두 팔 벌려 달려가는 나와는 달리 남자아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매번 퉁명스럽게 '다녀왔습니다'를 내뱉고는 엄마가 안아주는 품에 짧게 안긴다. 이것 만으로도 만족한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사춘기라는 어마어마한 고비가 준비되고 있기에 거부하지 않는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매서운 바람과 갑자기 방문한 혹한의 기운과는 다르게 거실에 햇살이 가득했다.

오후의 나른한 분위기를 틈타 책을 보던 중 아들의 현관에서 아들의 귀가를 알리는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달려갔고 아이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데 늘 들리던 '다녀왔습니다'의 씩씩함은 없었다. 대신 다른 종류의 '씩씩'거림이 들어있었다. 나로서는 원인을 모르는 아이의 분노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이내 내뱉은 거친 단어가 심장을 덜컥하게 만들었다.


'깡패 같은 놈들'


아직 어린 나이기도 하지만 평소에 센 척은 해도 이토록 거친 단어를 입에 담지 않던 아이였다. 그런데 혼잣말 치고는 목소리가 조금 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엄마의 걱정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방으로 바로 들어가 가방을 벗는다.

그리고 거실로 나와 내 앞에 앉아서 이유를 설명한다.


사연은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서 비롯되었다.

친구는 아니었다. 그저 자주 만나는 동생들.

평소에도 장난이 심해서 여러 번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던 아이들. 그래서 한동안 내가 신경 쓰고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더랬다. 그런데 그 수위가 조금씩 올라가다 물리적인 힘이 등장하고야 말았다. 다행히 신체에 대한 접촉이나 상해 같은 일은 없었다. 그러나 들고 있던 물건에 대하여 그 힘이 작용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아이는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했다. 이야기를 듣는 나 또한 덩달아 분노의 게이지가 가득 참을 느꼈다. 속으로는 '너도 그냥 들이받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상대는 내 아이보다 나이가 어렸다. 덩치는 그네들보다 우리 쪽이 우월했다. 평소에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인지 피지컬로는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사이즈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폭력을 또 다른 폭력으로 맞서는 상황은 어떤 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 아이에게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 아이가 더욱 분노하게 되었던 속 마음 또한 잘 알고 있었다.

1대 다수의 문제였다. 그러나 많은 인원도 아니었고 상대방은 유독 평균적으로 신체가 작은 아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아들은 더욱 폭력을 쓰지 못했다. 운동을 배우면서 스스로 무도인이라 여겨왔다. 자신보다 약자는 지켜줘야 한다는 명백한 정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럴 때면 태권도 관장님께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 할 듯싶다.


그동안 큰 싸움도 아니고 어린아이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서 가능한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애들이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 여겨왔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무언가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불쾌함을 느낄 장난이 그동안 누적되어 있었고 물리적인 에너지가 등장했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이쯤에서 중지시켜야만 한다고 여겨졌다.


어쩌면 아직 어리기에 그 행동들이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중 다행인 점은 그 집이 어디인지부터 상대의 부모들 또한 자주 인사하는 사이였다.

내 아이에게 결국 들이받으라 말하지 못했다. 아직 어리니까 이해하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조차 더 이상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 아이의 마음이 다쳤다.


바로 확실하게 거절하는 법에 대하여 강력한 교육이 들어갔다. 들이받는 것은 엄마로서 내가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새끼의 마음이었다. 확실한 거절을 통해 스스로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지키는 것. 그리고 이미 스크래치 난 부분은 부모로서 치유를 해 주는 것이었다. 위로와 공감, 그리고 내 새끼 마음 지키는 거절 방법을 알려주는 것을 끝으로 집에서의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남은 것은 복잡해지는 내 마음과 머릿속이었다.

이런 일로 상대의 집으로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재발 방지를 위해 무언가 조치가 필요했다.



다행히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다음날 학교에 가려고 양손에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신호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출근과 등교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간.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그 사이에는 그 집 가족들이 타고 있었다.


늘 그래왔듯이 인사는 밝게.

그리고 덧붙여할 말은 확실하게.


"안녕하세요~. 혹시 잠깐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마침 그 집의 엄마가 아닌 아빠가 있었다. 당연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그 옆에 있던 아가들은 전날의 일들이 떠오르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짧지만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흐르고 1층에 내렸다. 공동 현관에서 우리는 모두 함께 다시 만났다. 분위기는 보통의 부모들이 등굣길의 수다 떠는 식으로 흘러갔다. 다만 긴장한 아이들의 눈망울만 소리 없이 움직였다.


서로 이웃이었고 아이들 또한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더욱이 나한테만 심각했고 객관적으로는 큰 사건이 아니었기에 분위기는 굳이 험악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상대 부모에게 간단한 상황을 설명했다. 아직 어리다는 것은 혼나는 것보다는 이해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혼내고 싶지도 않았다.


'네가 잘못했어!'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저 상대가 싫다고 표현하면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과 물리적인 힘은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상황을 이해한 상대편은 다행히 나와 생각이 비슷했다. 때문에 시작처럼 마무리 또한 밝고 안전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학교에 도착한 큰 아이의 마음속 상처는 엄마의 연고를 바른 듯싶었다. 얼굴의 표정이 그랬고 이제 괜찮다고 표현하는 말이 그러했다. 덩달아 나의 아침 등굣길이 기분 좋아졌다.


등교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대편 아빠를 다시 만났다.

이른 아침의 일련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 장본인으로서 미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혹여 큰 소리로 번질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시작과 끝이 모두 훈훈하게 마무리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되뇌었다.


'이른 아침에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그리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상대의 감정을 읽는 게 어려웠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되돌아온 말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좋은 이웃을 만난 것 같아서 안심되고 감사했다.


그동안 살면서 큰 소리 내가면서 누구와 싸움 한 번 없이 살았다. 말싸움으로 이길 정도로 말 빨도 없었고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던 쫄보 같은 성격이었다. 그런데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다. 집에 들어와서도 한동안 벌렁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 내가 내 새끼를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내가 진짜 엄마가 되어가는가 보다.

누구를 떠나 나 자신조차 제대로 지키는 일부터 어려웠던 나였다. 그런데 아이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일은 상당한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이 부모가 되면서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이번 일로 인하여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아이들이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나 또한 매년 경력이 쌓여가는 엄마가 되어간다. 앞으로 아이가 50살, 100살이 되어갈 때마다 계속해서 이런 일에 대하여 앞장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내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가르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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