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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Apr 18. 2023

명절 전의 설레임


어렸을 적 나의 기억 속에서 명절은 대목이자 설렘이 가득한 날이었다.

설날의 세뱃돈은 당연했었고, 일 년 동안 잘 보지 못했던 사촌 언니 오빠들과 조카들까지 모든 친척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연세가 많으셨던 할머니덕에 일가친척들의 평균 연령은 그 당시 친구들의 일반 상황과 달랐지만 그것은 나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심히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 덕에 중학교 때까지 명절에는 한복을 당연하게 입었는데 어린 마음에 한복이 참 예쁘고 좋았을 뿐이다.   

  

다른 집에 비하자면 증조할머니쯤 될 법한 나이차이. 덕분에 막내아들인 우리 아빠의 막내딸인 나에게 친척 언니오빠들은 친구들의 이모, 삼촌쯤 되는 나이었다. 나는 당연하게 한두 살 차이 나는 조카들 틈에 껴서 일가친척 중 가장 막내로서 모든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즐겁고 설렘만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명절 전 설레임은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가며 조금씩 퇴색이 되기 시작했다. 마냥 즐겁고 신이 났던 명절은 여자임에 막내라는 이유로 집안일을 해야만 했고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니 엄마의 노고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조카들과 술래잡기를 하던 때 엄마와 새언니들은 주방에서 나오지를 못했다, 당연히 거들어야 할 남정네들은 방 안에 빙 둘러앉아 자기들만의 대화의 꽃을 피우며 자발적 사육을 당하는 모습. 참 대비되는 장면을 그제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달까.     


지금은 할머니께서도 돌아가시고 바뀐 세상에 걸맞게 남자들도 많이 돕기는 하지만 여전히 주방에서 고무장갑을 끼는 이는 막내인 내 몫이다. 그나마 결혼이라는 핑계로 설과 추석은 열외가 되었지만 내가 없는 자리에는 그 누군가 또 고무장갑을 끼고 있을 것이 당연했다. 그런 모습을 보아왔던 탓에 ‘결혼이란 미친 짓’으로 받아들였던 한때였다.      


시간이 지나 사랑하는 이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당연히 우리 집 풍경만 보아왔기에 명절은 또다시 고통으로 물들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아들만 키우셨던 어머니는 옆에서 알랑거리는 막내며느리를 예뻐해 주셨다. 남의 집 귀한 딸이 왔다고 설거지를 하겠다는 나를 밀어내시고 아들을 부르시는 모습. 감격이었다. 피곤해 보인다며 억지로 낮잠 자라고 방으로 떠밀고 문을 닫아버리시는 아버님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내가 기억하고 생각했던 명절의 모습은 더 이상 없었다. 어릴 적 설레임이 힘겨운 시간으로 바뀌었던 과거. 조금씩 나만의 세상에서 다시 설렘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집이 같은 상황이 아니듯 그 차이점을 몸소 체험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친정엄마에게는 명절에 나만 쏙 빠지는 것이 미안하다. 하지만 친정에서 못 느끼는 명절의 평안함은 시댁에서 느끼게 된다. 그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하시는 시부모님께 한편으로는 죄송하지만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 것이 참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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