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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Apr 23. 2023

이야기꾼


말이라는 건 참으로 신비하고 요상한 재주가 있다.


자신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질 수도, 마음 상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분과 상관없이 조심스레 접근해야 하는 종목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상대가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그저 하고 싶은 의미가 있을 때 글로서 그 내용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무기가 문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며 마음속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우리는 모두 다 이야기꾼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괜스레 사극이나 예전 역사 기록들에 나오는 이들이 떠오른다. 거창한 문장으로 콧대를 높이는 양반네들과 달리 한자의 사용이 어려웠던 서민들 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말이다. 그 당시에는 문자 자체도 활성화되지 않았을뿐더러 과학 기술의 미 발전 덕분에 책은 돈 많은 집안의 특별한 소유물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의 흔하디 흔한 소설이나 자기 개발서 또는 인터넷 뉴스 등의 정보는 접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이야기꾼’은 이 역할을 대체해왔다. 다양한 공연조차 많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서 그들은 셀럽의 일종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존재로 인하여 소문이라는 것이 생겼을 테고,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정보 매체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문자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신의 글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될 수 있다. 스스럼없이 쓰고 지우고 할 수 있는 도구 또한 널려있어 언제든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데 어려움이 없다.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쓰자. 방식이야 어찌 되든 일단 글로 풀어내게 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내 삶의 이야기꾼이라고 해서 반드시 재미난 말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타인에게 전해야 하는 말,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문자를 통해 표현하다 보면 내면의 응어리는 풀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타인에게 입바른 말을 함으로써 서로 관계가 어색해진다면 굳이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생긴다. 생각 없이 내뱉은 나의 언어가 상대의 마음을 할퀴는 것처럼 글 또한 조심해야 한다.     


나 자신에게 어색하지 않은 수준에서 글을 써 보자.


나의 말을 내가 듣는다는 생각을 잊지 말고 이야기꾼이 되어 스스로에게 하듯 그렇게 쓰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처럼 정말 두서없는 하나의 무질서를 겪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글에는 힘이 생길 것이고 나에게서 남으로까지 점차 퍼지는 이야기꾼으로서 그 역할은 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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