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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Jun 07. 2023

이미 무너진 가족계획과 흔들리기 시작한 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결혼.

결국 양가의 축복 속에 스타트를 끊기는 했으나 여기에서부터 나의 가족계획은 이미 오류가 나기 시작했다.

눈 깜빡할 새 나에게는 한 명의 보물이 찾아왔고, 조금 적응할 만했더니 또 다른 보석이 나에게 와 안기게 되었다. 어영부영하다가 4인 가족이 되어버린 나.


'티 나지 않았지만 조금씩 진화해가고 있었던 상황에서 꿈을 꿀 수 있었던 시절은 행복과 감사가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매우 달랐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아빠와 같은 사람을 골랐다고 생각했으나 세상 사람은 모조리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똑똑하고, 다정한 내 남편.

언제나 자상하게 나의 헛짓을 다 받아주고 사랑해 주는 나의 반쪽.


꿈과 야망이 가득하다 보니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하였다.

한 곳에서 오래 머물수록 좋다는 구닥다리 내 생각을 어필하며 구박이라도 할라치면 또 실력은 출중하여 여기저기서 인정을 받았다. 게다가 결론은 항상 더 나은 곳으로 잘만 이직한다. 대놓고 바가지를 긁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덕분에 임신과 함께 퇴사를 하게 된 나는 항상 마음을 졸이며 살 수밖에 없었다.


꼬물거리며 엄마와 눈 마주치고, 배때기로 온 바닥을 청소하는 아이는 늘 바쁜 남편덕에 오로지 내 차지였다. 말 못 하는 아이와 하루종일 할 말도 없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며칠, 몇 달이 되도록 볼 수도 없었다. 자연스레 표정은 한 가지로 고정이 되어갔으며 나도 모르는 동안 점점 더 음침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집순이 었던 나의 성격상 이 업무가 나에게 딱 맞을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전혀 다르게 와닿았다.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호언장담과는 사뭇 다르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았다. 그 시기의 친구들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리지 않고 온전한 육신의 혜택을 누리며 행복을 쌓아가고 있었다.


비자발적 칩거 생활은 점점 더 그들과 격차를 피부로 와닿게 만들어 주었다. 직접 만나면 상대적 박탈감만 더해가니 결국 출근하는 남편을 웃으며 배웅하고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주저앉아 현관 앞에서 혼자 오열하며 울기도 했었다.


남편도, 아이도 모두 나에게 감사한 존재였다.

나는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틀어진 가족계획에서부터 시작했다 여겼다.

더 이상 멈추지도 되돌리지도 못하는 그러한 상황이 가슴을 쥐어짜며 세상 모든 것들의 책임은 '나'라고 자책했다.


14평짜리의 작은 집은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는 가장 튼튼한 감옥이 되었다.

언제나 숨은 쉬고 있었지만 벗어날 수 없는 그러한 곳.

결혼과 출산이라는 보기 좋은 제도가 나의 목을 옥죄는 무언의 쇠사슬이 되어 벗어나지 못했다.


더 이상 내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

무려 30년 동안 '나'로 살아오면서 차곡차곡 쌓아놓은 인생이 있었는데 하루종일 집안일 지옥에 갇혀있는 현실이 버티기 힘들었다.





죽으면 끝이 난다


식사준비, 설거지, 청소, 빨래, 육아...


멈추지 않는 살림은 개미지옥

하면 티 안 나고 안 하면 티 나는 그런 무한괘도는 내 이름 석자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귀찮음은 당연지사 게으름을 옵션을 장착하고서 하루하루 버텨냈지만 돌아오는 티끌들은 나의 책임을 비난한다. 이런 거 하라고 세상에 태어난 듯 벗어날 수 없는 늪 안에서는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논쟁을 싫어하는 성격처럼 남편의 한소리에 반박보다는 '죽으면 끝이 난다'는 말로 셀프 최면을 걸며 버텼다. 그렇게 솔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마냥 끊어지지 않는 목숨을 스스로 커팅할 재량도 없었다. 질긴 목숨은 그리 쉽게 죽어버리지도 못하고 연명을 했으며 스스로 실행을 할 깜냥도 못된다는 것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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