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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Jun 08. 2023

불행 중 다행 VS 호사다마, 누가 더 강력했을까


군더더기 없이 나를 막아 세우는 가정주부라는 임무

언제 또 회사를 그만둘지 모르는 남편


얇은 살얼음판 같은 바닥 위에 서서 누가 먼저 그 얼음을 깰지 눈치게임을 하는 듯한 일상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2017년 5월 즈음

결국 평화라는 포장지는 남편이 먼저 시원하게 풀어버렸다.

회사를 퇴사하며 아는 형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결혼 전부터 언젠가는 자신의 회사를 차리겠다고 말했다.

연애하던 철부지의 나는 어쩌면 그의 그런 담대하고 야망 있는 모습에 더욱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편의점이나 치킨집처럼 구멍가게를(특정 업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회사이기에 어느 정도 동의를 했었다. 그러나 그 조건은 우리에게 빚이란 존재하지 않는 사정에서 기본 사업 지참금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말이다.

그리하여 서로가 예상한 시점은 최소 결혼 후 10년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는 임신과 함께 전업주부가 되었고,

프로 이직러는 한 번도 1년을 채우지 못했었기에

당연히 퇴직금이나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에 전세금의 90프로는 부채였다.


"절대 안 돼!!!!!"


나는 당연히 반대를 외쳤다.

그러나 그는 한 번 결정한 것은 결국 해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의미 없는 나의 허락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아는 형과 함께 시작한 사업은 각자의 역할을 정해가며 착착 진행되었다.

법인 설립 등 두 사람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듯싶었다.

해가 지나고 나름의 안정적인 흐름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회사 사람들과의 제주도 가족 여행도 다녀왔다. 


부부가 된 이후 처음으로 다녀온 가족여행.

태어나서 처음 밟아보는 제주땅은 천국이 따로 없었다. 살림 싫어하는 나는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멋진 바다와 경치구경을 했다. 그동안 힘들어서 응어리를 지나 돌덩이가 된 마음이 그제야 조금씩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처녀 적 모아두었던 3,000만 원으로 시작한 결혼인생.

멋진 한강뷰의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널찍한 아파트가 아닌 서울 외각의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몇만 원짜리 옷장과 식탁 등으로 채운 아기자기한 우리의 출발이었다.

아이가 생기고 LH를 통해 대출받아 그나마 14평짜리 빌라로 거처를 옮긴 후 여기까지 왔다.

원래 물욕이 크게 없는지라 우리 두 사람만 변하지 않으면 문제없이 버텨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높다란 장벽들의 연속이었다. 연속된 장애물로 너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거친 파도를 마주한 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없이 깔깔거리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이대로만 가면 앞으로 내 새끼 잘 클 수 있을 것이라는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남편은 바깥일, 나는 집안일. 

서로의 위치에서 각자 맡은 일 열심히 수행한다면 더 나은 삶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그해 가을 둘째라는 보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다음 해에 우리는 4인가족의 완전체가 되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 좋은 일 다음에는 나쁜 일이 생긴다


인생이 굴곡이 없다고 행복하지 않았을까? 나는 행복했을 것 같은데...

물론 이렇게 승승장구했다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곁에는 '코로나 19'라는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이 방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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