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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Jun 09. 2023

이 또한 지나가리라, 버티자

난데없이 등장한 불청객인 코로나 19는 조용히, 그리고 차츰 우리 일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당연한 겨울철 독감 정도로 생각해 왔던 그 시발점은 큰아이의 어린이집 겨울 방학 이후 점차 영역을 넓혀갔다. 호흡기가 약한 아이가 혹여 감기를 달고 살까 걱정되어 며칠 더 가정보육을 하겠다고 원에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휴원이 되어 버렸다. 때마침 오랫동안 기다렸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으나 그곳도 사정은 마찬가지. OT라고는 하나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둘째를 품에 안은채 큰아이와 함께 방문한 그곳에는 선생님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코로나 투쟁기는 시작되었다.


그때 이후로 무서운 병마는 한 종교단체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점차 전국으로 확산이 되었다.


어차피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전업주부인 나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긴급 보육이라는 이름으로 등원을 해도 된다 했으나 원인도, 치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얇은 마스크 하나만으로 이 존재를 막아야 할 아이 걱정에 5개월을 버텼다.


'버티자. 이번에도 버티면 된다!'


아무리 무서운 질병이라도 내 새끼는 내가 지킨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던 듯싶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나의 고난은 어린이집 문제와는 차원이 달랐다.




남편이 시작한 사업은 전시/컨벤션 분야였다.


국제회의, 박람회 등 사람이 모여야 하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병균 덩어리 하나 앞에서 무참히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라에서는 헬스장, 노래방, 술집 등 사람들이 늦게까지 모여있는 것을 못하게 만들었다. 커다란 전시회 같은 행사는 당연하게 1차적으로 금지가 되어 버렸다. 그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할지라도 판 자체를 열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12월 엄마들 사이에서 지나가듯 흘러나온 단 한마디.

"중국에서 이상한 병이 돌고 있데요"는 그 이후로도 계속 내 삶을 방해하는 목소리로 남아 버렸다.


하늘길, 뱃길 모두가 막혀버린 상황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큰일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전시/컨벤션 분야는 '가파르게'가 아닌 일시 정지 상태로 죽어버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버티자'


같은 말만을 되뇌며 버티기를 몇 개월. 생활비는 점차 바닥을 드러냈고, 남편의 회사 재정과 관련하여 빚은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5세 된 아이는 1년간 어린이집을 딱 2개월 나갔을 뿐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고통의 늪은 이자 상환을 해야 하는 매달 월말이 다가오면 저승사자를 맞이해야 하듯 두려움에 떨었다. 

코로나 직격탄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환액을 막아내고자 생전 처음 들어보는 OO은행들에게 사정을 해야 했다.

교통비 1,200원이 없어 정류장 몇 개를 걸어 다녔다.

인터넷의 싸고 예쁜 옷들은 우리에게는 언감생심, 

여성용품을 살 수조차 없어 아이의 천기저귀를 이용해 인터넷을 보고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비참했다. 

그리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방 안에 틀어박혀서 일거리를 구하는 그가 너무 미웠다.

나라도 나가서 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코로나라는 병마 앞에서는 그 흔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돈가스집 주방보조 등 어느 곳 하나 사람을 구하는 곳이 없었다. 절망의 연속일 뿐이었다.

힘들 것이라 말씀하셨던 부모님께 잘 사는 모습만 보여드리기로 작정한 터라 말도 못 했다. 

그 와중에 미련하게 보일지언정 어떻게든 우리끼리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버티자'


죽고자 애를 쓰면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살고자 애를 쓴다면 결국 하늘이 답을 주게 된다.


사람이 정말 극한에 다다르면 목숨이라는 귀한 것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TV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정말 끝이 눈앞에 존재한다면 그 너머에 새로운 시작이 분명 있다. 

그렇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끝을 찍을 때까지 버티는 것. 그것이 승자가 되는 지름길이라 보았다.


이 악물고 버텼다.

본인도 열심히 하려다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막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마냥 미워할 수조차 없었다. 그 와중에 나 생각한다고 집안일, 아이들 모두 맡기고 바람 쐬고 오라고 등 떠밀어 주는 자상한 남편.

미우나 고우나 내 신랑.


그래.

힘들겠지만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 둘이 힘을 합쳐서 함께 버텨보자 다짐했다.

술 안 좋아하는 우리였지만 근처 식자재 마트에서 저렴하게 사온 맥주 한 캔씩 하면서 그렇게 본격 버티기는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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