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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Jun 12. 2023

'포기하지 않음'이라는 단 하나의 조건

눈앞에 힘듦으로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지만, 살고자 하는 마음은 그 안에서 작은 행복들을 찾아내게 만들었다.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일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주변의 따뜻한 손들이 너무 많이 나를 감싸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옥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은 단지 나의 마음뿐이었다.


두 아이들을 앞에 두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시골에서 텃밭을 하시는 친정 아빠 덕분에 우리 가족 굶어 죽지 않았다. 매년 가을이 되면 직접 농사지으신 쌀을 보내 주셨다. 여름이 되면 가지, 호박, 토마토 등 다양한 식재료를 보내주셨다. 손주들 주신다고 다양한 먹거리들을 농약 한 번 안치고 손수 길러내셨다.


영유아 두 명, 소득이 적은 덕에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영양플러스에서 한 달에 두 번 작게나마 식품을 보내 주었다. 계란과 우유, 약간의 쌀, 그리고 제철에 따라 아이를 위한 유기농 애호박, 감자 등을 받을 수 있었다. 교회에서 만난 인연은 그들의 아이들이 성장해 감에 따라 우리 아이들에게 옷과 책을 물려주었다.


마냥 앞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했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깜깜한 쥐구멍이라도 조그마하게 빛은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커다란 바위 앞에 서 있다 보니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답답함에 몸부림을 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인적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 동네 뒷산으로 데리고 다녔다. 우리 가족만의 놀이터였던 도서관은 애초에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뚜벅이로서는 대중교통을 타고 교외로 피크닉을 간다는 건 위험한 도박일 뿐이었다. 나에게 집은 감옥이었을 뿐이었지만 아이들까지 그렇게 옥살이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나마 마음 놓고 마스크 없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었던 곳은 옥상이었을 뿐이다.


따뜻한 봄에는 다이소에서 사 온 토마토를 심었고,

더운 여름에는 아빠와 물총 놀이를 했다.

가을에는 옥상 텃밭에서 키운 상추와 토마토를 따서 먹었고,

눈이 오는 겨울에는 꼬마 눈사람을 만들었다.


열심히 살아보고자 애를 쓰다 보면 결국 하늘이 답을 해준다.

내 삶이 아무리 지옥이라 할지라도 그곳을 벗어나겠다 마음먹으면 반드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찾아낼 수 있다. 다만 여기에 '포기하지 않음'이라는 단 하나의 필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너무나 당연하여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는 것이 내가 늪에서 허우적거렸던 이유였다.




남들처럼 생후 6개월부터 각종 여행이나 문화센터에 다니지 못했지만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남이 쓰다 버리는 장난감을 주워와 씻어서 손에 쥐어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나의 선호도보다는 가격을 먼저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던 '나'라는 존재를 다시 찾고 싶었다.

언제나 당당하게 허리를 펼 수 있는 그런 '나'가 되고 싶었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면서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다 고개를 들어 햇살이 비추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마음은 여전히 깜깜했지만 파란 하늘에 솜사탕처럼 예쁜 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달달하게 보였다.


맑은 하늘을 잔뜩 구경한 다음 몸을 돌려 집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던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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