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책 좀 읽어 주세요

by 그냥사탕

아침에 눈을 뜨자 어깨의 통증이 가장 먼저 느껴졌다. 이어서 잠을 깨려고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그런데 목소리에서는 남의 것과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가을이 성큼 다가와서 목감기가 걸렸을 가능성도 있겠으나 통증은 딱히 없었다. 그렇다면 아직 잠에 취한 상태였나? 싶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아~ 어제!!'


사실 어제저녁에 큰 일은 없었다. 그저 아이들 숙제 봐주고, 저녁을 먹고, 치우고... 책을 읽어 주었다.


맞다.

책을 읽어 주었다.

동화책 한 권이 아닌 조금 긴 이야기 책이었다.


아가 때부터 친숙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 책을 한 권, 두 권씩 읽어주었다. 매일은 아닐지라도 잠들기 전에는 조금 씩이라도 보여 주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책을 읽어주면 들으면서 잠이 들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점점 각성 상태가 되어 쌩쌩해진다. 한 권 다 읽으면 또 한 권, 이후에 또 한 권... 내가 너무 재미나게 읽어주는 재능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귀찮음이 있을 때도 있었다. 피곤해 죽겠는데 누군가 동화책 한 권을 들고 등장하면 모른 척할 때도 있었고 도망갈 때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 남편은 웃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에 나의 업보라고 놀리기도 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보니 다행히 두 아이는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로 자라고 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큰 아이가 조심스레 나에게 묻는다.


"엄마, 오늘 저녁에 책 한 권 읽어 주시면 안 돼요?"


이제 초등 3학년인 아이는 이제 혼자서 곧잘 책을 읽는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잠자리 책을 읽어준다. 때로는 그 시간에 귀 기울이는 둘째 옆에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볼 때도 종종 있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콕 집으면 부탁 조로 말을 한다? 이건 필시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는 사인이었다.


어차피 생각보다 이른 저녁을 먹기도 했고 이후 시간 적 여유가 있을 듯하여 흔쾌히 그러하겠다 답변을 했다. 어린이 도서쯤이야 책 읽기 경력 짬밥이 얼마인데 두려워할까. 내가 해리포터 1권 상, 하권을 모두 읽어 줘 봤던 사람이야!


식사 후 아이가 책을 한 권 들고 왔다.

역시나 특별한 것은 아니고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초등 도서 중 한 권이었다. 초등 1~2년의 읽기 공백이 다소 있었기에 줄글을 빌려올 때면 고학년 책 한 권쯤 살짝 껴서 가져온다. 어차피 10권을 빌려와도 아이 마음에 드는 것은 3~5권 정도이기에 마음을 비우고 대여한다. 다 읽으라는 무언의 압박이 아닌 다양한 책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중 아이가 들고 온 것은 본인의 수준보다 살짝 높은 것이었다. 제목이 재미있어 보이나 직접 읽기에는 글밥도 많고 단어도 어려워 보이니 엄마한테 읽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뭐 그러면 어떠랴~ 아이와 함께 이 또한 추억 쌓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책과 친해지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엄마표 잠자리 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1시간이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2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그리고 나는 목소리를 잃었다.


무슨 인어공주도 아니고 마무리가 왜 이럴까.

많은 시간이 지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에는 아이들은 환호했고, 나는 멘털이 털렸다.

아이들은 이후에 그 여운이 계속되는지 도무지 잠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피곤에 절어 빨리 잠들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눈을 뜨고 나니 그 여파가 팅팅 부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순간은 괴로웠어도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분명 아이와 좋은 추억 하나 쌓은 것이라 여길 때가 오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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