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님 이야기>
정형외과를 다녀왔다.
일주일 전 이른 저녁을 먹고 두 발 자전거 연습을 한다고 집 밖을 나섰던 아이들이다. 마침 아빠 퇴근 시간과 맞물려 있었다. 아빠가 곧 도착한다는 소식에 자전거를 타다 장소를 옮겼다. 그리고 놀이터에서 트램펄린을 뛰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화목한 가족의 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들이라는 이름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멀쩡하게 타던 트램펄린. 그는 왜 갑자기 아빠에게 묘기를 보여준다고 그랬을까. 덕분에 보기 좋게 바닥으로 떨어진 아이는 오른쪽 다리를 꺾였다. 다행히 아빠라는 든든한 동지가 있어 집까지 업고 들어올 수 있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분명 당일에 얼음찜질도 했었고, 붓기도 없었으며, 다음날 괜찮다는 말과 함께 태권도 또한 3일간 쉬고 이번 주부터 다시 나간다. 정말 본인도 멀쩡해서 뛰어다녔다. 그런데 아침에 갑자기 절뚝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물어보니 아프다고 한다. 그러면서 본인 입으로 '뭔가
왜! 왜! 왜!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왜 말을 못 하니!
하교 후 병원에 가려고 태권도 학원 앞으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관장님에게 물어보니 너무 멀쩡했다고 한다. 이어 만난 아드님. 혹시 몰라 관장님은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아팠다고 이야기한다. 왜 말을 안 했냐고 당황해하는 관장님에게 아이는 답한다.
"할 만했어요."
젊음이 깡패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
관장님과 나는 마주 보며 서로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마무리했다.
버스를 타고 드디어 정형외과에 도착했다.
깨끗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나 또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아드님의 에너지는 여전히 활발하다. 대기하는 동안 눈으로 힐끗 거리며 구경하는 나와는 달리 직접 다리를 움직이며 하나하나 뜯어가며 확인한다. 그래도 이제 초등학생 형님이 되었다고 만지거나 큰 소리 내서 머릿속 말을 모두와 공유하지는 않는다.
드디어 이름이 불렸다. 그리고 우리는 진료실로 입장했다.
어떻게 오셨냐는 원장님의 말에 나는 당연히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 발 앞서 아이가 내게 요청한다.
"엄마, 제가 말해도 될까요?"
아직 한참 어리다고 여겼고 많이 부족하다 생각했던 내 새끼.
그런데 먼저 할 수 있다고 표현한다는 사실이 놀라기도 감격스럽기도 했다. 게다가 심지어 잘한다. 다쳤을 때의 상황과 지금 상태를 조목조목 말한다.
'옴마야~ 우리 아들 이제 다 컸네'
다행히 진료 결과는 괜찮았다.
일주일이 지난 상태에서 여러 검사를 했고 약 처방과 함께 물리치료를 했다.
아들이라 그런가? 아프다는 말에 마음이 철렁하고 괜찮다는 말에 금세 평정을 되찾는다. 하지만 이 분은 일관성 있게 아무렇지 않아 한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을 때에도 처음 경험하는 것에 불편함 보다는 그저 무덤덤하다. 시간 때우기용으로 누워서 책 읽는 모습에 선생님이 칭찬의 말을 건네도 짐짓 아무렇지 않아 한다. 내 눈에는 그저 허세이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또 다를지도.
<따님의 이야기>
드디어 하루의 3분의 2가 지났다.
무사히 초딩이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매우 험난했다.
모든 버스를 계속 눈앞에서 놓치는 바람에 엄청나게 많이 기다리고, 동시에 진짜 많이 걸었다. 다행히 둘째의 하원 시간에는 맞출 수 있었지만 내 다리는 후들거렸다.
하원 후 집에 돌아와 아무 생각 없이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정형외과 한 번 다녀오는 일이 왜 이리 고단한지, 가을이라고 했으면서 해는 왜 이리 또 뜨거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와중에 손을 닦고 엄마 곁으로 와서 찰싹 달라붙어있는 둘째는 엄마 귀에서 피가 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자기 얘기만 하고 있다.
딸 : "엄마 피곤해요?"
나 : "응~ 오늘 오빠 다리 아파서 병원 다녀왔더니 조금 피곤하네"
딸 : "그럼 방 문 닫고 침대에서 조금 쉬고 있어요"
나 : "응~ 고마워. 엄마 딱 5분만 있다가 나올게"
딸 : "아니에요! 15분 있다가 나오세요!!!"
생각보다 단호하게 타이머까지 들고 와서 나를 배려? 해 주시는 따님 덕분에 침대에 누워 쉴 수 있었다. 그런데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무얼 하는지 궁금해서 방 문을 열려는 찰나 '절대 안 돼요!!'라는 아이의 외침이 들렸다.
그럼 어쩐다. 이대로 문을 열고 나가면 오열부터 시작하여 하늘이 깜깜해질 때까지 한바탕 난리가 날테다. 그냥 약속된 15분이 다 될 때까지 대기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있던 중 드디어 방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엄마 힘들어서 내가 저녁을 차렸어요."
그녀의 볼이 발그스레한 것이 분명 설렘의 증거일 텐데 나의 속은 불안함이 싹튼다.
하... 하... 하.......
지금 오후 4시 30분인데.....
5시부터 저녁 만들려고 생각했었기에 밥통에 밥도, 식사를 할 만한 반찬이나 요리도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 생각해서 이렇게 밥상을 차렸다는 것이 기특하기도 웃기기도 했다. 감동은 옵션으로 받았고 말이다.
도대체 뭘 차렸을 까 싶어 들여다보았다.
- 아침에 먹고 남은 찬밥을 따로 담아두었던 것을 소분했다.
- 밥 양이 적어서 자기 밥은 따로 챙기지 못했다.
- 우리 가족 함께 먹을 것이기에 아빠 것까지 준비했다.(지금은 4:30, 아빠 퇴근은 6시)
- 반찬은 냉장고에서 꺼내 그릇에 옮겨 담았다.
- 밥그릇, 국그릇은 선반 위에 있기에 못 꺼내고 접시로 모두 사용.
- 안방에서 엄마가 기침을 한 번 했기에 물의 온도는 따뜻하게.
하아.... 이야기를 듣다 보니 디테일이 정말 살아있다.
다행히 국은 아직 인덕션 사용을 못하기에 있는 줄도 몰랐던 듯싶었고, 냉장고에 있던 다른 반찬들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도 위에 있어서 발견 못한 듯싶었다.
설거지 통에 놓여있는 빈 그릇과 어지러이 널려있는 흔적들이 얼마나 애쓰며 준비했는지 보여주었다.
날도 너무 뜨겁고 피곤해서 지나가며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미취학 따님은 예민하게 캐치했나 보다. 전에 내가 아파서 못 일어났을 때 아들이 냉장고 털어서 아침밥 차려주었던 일을 기억해 두었나 보다. 이런 건 네 아빠가 보고 배워야 할 듯싶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옆에서 나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그에 맞는 칭찬을 서둘러라!'
평소 무뚝뚝한 나이기에 표현력은 턱 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런 대접을 받고 그저 '고맙다'라고 한다면 여러모로 상처받을 테다. 동시에 해 떨어질 때까지 내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찰나의 시간 동안 두뇌에 있는 모든 어휘들을 총 동원하여 조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굴에 있는 수많은 근육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지금 당장 최대한 감동받는 표정으로 위치!'
나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친구다.
다양한 미사여구를 이용하여 그녀의 노고와 마음 씀씀이 등을 치하했더니 그제야 마음에 들었나 보다. 웃으면서 엄마에게 달려오는 폼이 아주 사랑스럽다.
같은 하루, 다른 느낌의 남매
아들은 무뚝뚝하고, 딸은 세심하다?
그저 세상이 만들어낸 편견을 한 줄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아들이 세심할 때도 있고 딸은 오히려 감정이 여러 갈래여서 어느 포인트에 맞춰야 할지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안 좋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뜻은 아니다.
아이스크림도 서른 가지 넘는 맛으로 골라먹는 시대인데 나는 그저 하루를 살아도 다양한 맛으로 지낼 수 있다. 그렇기에 하루가 정말 지루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