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한 번 해 볼까나

by 그냥사탕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창문에 김이 서려 있었다.

혹시나 하여 핸드폰으로 날씨를 확인하자 액정에 16도라는 숫자가 떠있다.

어쩐지 춥더라니...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에어컨 없이는 밤에 잠을 들 수도 없었는데 어느새 가을이란 녀석이 훌쩍 다가옴을 온몸으로 느끼는 새벽이다.


기온이 딱 1도만 올라도 덥다고 헥헥, 딱 1도만 내려가도 춥다고 덜덜...

인간의 몸이 참으로 간사하다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피식거리게 된다.


오랜만에 글 쓰는 아침이다.


한때 새벽 기상을 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했던 때가 있었다. 그동안에는 언제나 올빼미였던 나였기에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스스로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분 좋았다. 물론 굳은 의지로 인한 것은 아니었고 둘째를 낳은 이후 새벽 수유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더 이상 새벽 수유가 필요 없어졌음에도 그로부터 5년간 워킹맘을 하던 시기에도 이 습관을 지속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알람도 없이 잘 일어나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올빼미가 아닌 드디어 아침형 인간이 된 줄로만 알았다.


'나는 드디어 인간 개조에 성공했다!'라고 조심스레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섣불리 판단한 나의 자만심이자 착각이었다.

이후 새 보금자리로 터전을 옮기는 것과 동시에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자연스레 워킹맘에서 가정주부로 직업이 바뀌었다. 당연히 나의 루틴은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


밤에는 다음날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늦게 자고, 아침에는 등하원 시간만 맞추면 되니까 늦게 일어나고...


좋은 습관은 백만 년 동안 공을 들여야 하나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만 안 좋은 습관은 노력 1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새벽기상이 뭔가요?라고 외치는 내 몸뚱이는 5년 전 어느 날로 돌아가는 데에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출근할 곳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이렇게 여러모로 큰 일인 줄 새삼 깨닫게 되었달까.


그간 새벽에 눈을 떠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아이들을 기관에 맡기고 돌아서며 바쁘게 출근하던 워킹맘 시절에도 버틸만했었다.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업주부라는 새로운 직업은 결이 달랐다. 비서, 선생님, 가사 도우미, 등하원 도우미, 의사, 간호사, 회계사, 세탁소 등 다양한 직업을 한 데 모은 것이었다. 여기에 출퇴근 시간은 따로 지정되어 있지 않았으며 혹여 고객님께서 열이라도 나면 철야까지 내 담당이었다. 그러면서 인센티브는 고사하고 무보수다. 더불어 노동법에 저촉되지도 않는 업종이다.


이러한 핑계들이 조금씩 나를 갉아먹었다.

하루 이틀이야 그렇다 치지만 한 달, 일 년이 지나가고 피로도가 누적되어 가니 살고 싶어졌다. 이왕 사는 거 조금 더 폼나게 살고 싶어졌다. 하지만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또 한 번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생활로 몸과 마음이 너덜거리던 차에 문득 글쓰기가 생각났다.


그간 일상을 살아가며 머릿속으로 혼자 읊조리던 내용들, 이런 내용을 쓰면 참 후련하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주었다는 선물 중 하나인 망각은 찰나의 아이디어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고 모두 삭제시켰다. 복원도 불가능하게 아주 깨끗하고 맑게 말이다.


게다가 막상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으면 세상의 유혹이 대거 등장한다.

아이의 '엄마~!'소리, 밥시간이 다가와 식사 준비, 두 아이들의 싸움 중재, 어디선가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우당탕탕!!'소리 등 그 와중에 핸드폰 게임과 쇼츠, 릴스들은 어찌나 재미있는지. 글 한자 시작하는 것조차 산과 물을 건너가듯 대단히 어려운 과제로서 등장한다. 시선은 액정을 향하면서도 마음은 불편해지는 마법이다.


그렇게 많은 관문을 뚫고 겨우 키보드에 손을 올린 채 화면을 들여다본다.


'무슨 말을 써야 할까?'

이제 또 한 번의 중대한 미션이 내 앞을 막아선다.

예전에는 주제 하나만 떠올리면 뭐라도 끄적거렸던 듯싶은데 하얀 바탕의 화면을 바라보며 뭐라도 글자를 토해내라며 커서 하나가 깜빡임으로 재촉한다.


'오늘도 머릿속 원숭이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말을 한다. 긍정의 힘을 가지기 위해 계속해서 글을 쓰고 힘껏 밀어내는 중이다.' - 글쓰기를 시작합니다(더로드)


그랬다.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서 계속 원숭이가 부정적으로 꼬드기고 있었다.

근육을 키우려면 꾸준히 조금씩 해야 하듯이 글쓰기 또한 그러했다. 최근 몇 년간 하지 않았던 일을 하루아침에 완성하려니 언감생심이었다. 때문에 이제라도 글쓰기 근육이라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뭘 쓰지? 지금 내가 쓰면 그냥 헛소리 일 텐데... 누가 보고 욕이라도 내뱉을까 두려워진다. 하지만 그 헛소리가 시간이 지나면 나만의 역사가 될 것이다. 비록 흑역사로 남겠지만 말이다.


한 번 사는 인생 참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헛소리라도 벽을 보고 외치는 것보다 흔적을 남기는 문자가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이 또한 예전 어느 날 새벽기상을 통해 이루어낸 나만의 성공 중 하나이다. 가정주부로서 지내면서 엄마, 아내뿐인 나에게 누가 작가라고 불러주랴. 고맙게도 브런치에서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를 작가로 불러준다. 자연스레 땅에 떨어진 자존감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헛소리를 풀어놓는다 할지라도 손가락 질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하다. 혹시 또 알까. 브런치에 풀어놓는 흑역사들이 모여 언젠가 나처럼 상처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멋진 작가가 될 수 있을지. 그때까지 앞으로 나의 헛소리는 계속될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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