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른

by 그냥사탕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아침 시간.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사회생활공간으로 보내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기 위하여 나는 보이지 않는 눈치싸움을 시작한다. 아이의 기분 상하지 않도록 홀로 세수하고 등원 준비하는 모습을 추켜세우고 밥 한술 더 먹이고자 마음에 드는 반찬으로 대령한다.


내 눈에는 시간 혼자서 쏜살같이 달려가는데 꼬맹이는 천하태평이다. 한참을 방 안에서 꼬물거리며 무엇을 찾더니 결국 난감한 패션 센스를 자랑스레 선보인다. 5월 주제에 벌써부터 푹푹 찌는 날씨를 보여주고 있는데 바지는 두꺼운 기모바지, 상의는 해변에서나 선보일 듯한 캉캉 나시 원피스다. 그것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사촌언니에게서 물려준 것이어서 거의 롱스커트로 변신했다. 당연히 양말은 짝짝이. 그래도 본인이 선택한 의상인데 여기서 내가 뭐라 하면 삐칠 것이 분명하다. 끝내 원피스 속에 얇은 티셔츠 하나 받쳐 입고 서늘한 아침 기온 핑계를 대면서 바람막이 하나 더 걸치는 것으로 원만하게 합의를 보았다.

내 속은 문들어졌으나 포기하니 한결 편하다.

그렇게 본인만 즐겁고 행복한 등원이 이루어졌다.


오늘도 아이는 주변의 꽃들을 향하여 안부 인사를 한다.

아직 시간의 여유는 조금 더 남아 있었지만 늦어지는 발걸음과 옆에서 계속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각'이라는 키워드를 들먹이며 발을 재촉했다. 그렇게 유치원 안으로 아이를 들여보내놓고 근처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가방 속에서 책 한 권과 필기도구를 테이블 위에 꺼내 놓았다.


"후아..."


그제야 한숨이 돌려진다. 짧은 1~2시간뿐이지만 힐링 타임이 시작된 것이다.




커피 한 모금, 책 한 페이지...

한참을 그렇게 집중하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안에 '소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작가는 어린이에 대하여 애정을 담아 보듬어야 할 존재, 그 이상으로 존중받아야 할 동등한 시민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구구절절 옳은 말이 나 스스로 우리 집 꼬맹이들을 향한 태도를 점검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군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그에 대적해서 나는 '어른은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군다'는 편견... 은 아니고 뭐랄까 '전제'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많은 어른이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 김소영 에세이 <어떤 어른> 본문 p241 중에서...


내 눈은 순간 이 부분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한동안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중 '공공장소에서의 시끄러움'에 대한 내용은 나조차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맞다.

어찌 보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도 어른,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도 어른이었다.


아이들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면서 어른은 '너를 위한 거야'라는 보기 좋은 핑계를 대며 선의의 거짓말을 일삼는다(당장 오늘 아침에 내가 그랬다).

아이들에게는 무단횡단을 하지 말라면서 어른은 급박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냉큼 빨간불에 길을 건넌다.

아이들에게는 공공장소에서 큰소리 내지 말라면서 어른들은 그저 대화일 뿐이라며 우렁차게 그들의 말을 이어간다.


과연 이것만 그럴까?

생각하면 할수록 어른이 된 내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어린이들은 규칙이라고 말하면 그것이 자신만의 신념이 된 듯 곧이곧대로 지키려고 노력한다. 비록 매 순간 배워가는 입장인지라 서툴러서 실수들이 잦아도, 그럼에도 최선을 다한다. 아무리 발바닥이 움직이고 싶어 동동대고 있을지라도 초록불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면 한쪽 손을 번쩍 들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런 아이가 버젓이 보고 있는데도 나이 지긋하신 분이 신호를 무시한 채 짧은 거리라며 냅다 뛰어가면 옆에 서 있는 나의 마음이 덩달아 불편해진다.


한 번은 내 손을 잡은 채 그 장면을 함께 목격한 꼬맹이는 나에게 투덜거리며 물어봤다.

"엄마, 저 할머니는 빨간불인데 왜 지나가요?"

어린이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많은 어른들이 아이에게 신호를 잘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했었는데, 정작 그 기본을 지키지 않는 어른을 바라보며 뭔가 불공평하다고 느꼈나 보다. 나는 골목을 돌아 이미 사라진 어른을 같이 바라보며 딱히 뭐라고 대꾸를 못 했다. 같은 어른으로서 미안해할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어떠한 말도 아이에게 타당한 이유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조용히 말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늘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건너편 테이블에는 몇 명의 엄마들이 신나게 대화 삼매경이다. 각자의 자녀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이후 마음 맞는 엄마들끼리 커피 한 잔 하러 온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는 원치 않게 그들의 가정사와 아이들의 아침 식사, 등원룩, 아이들의 성격과 어린이집 선생님의 교육 방침까지 알게 된다. 아무리 사람이 몇 없는 오전 시간이라 할지라도 말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속사포로 쏟아지는 대화 내용 샤우팅 하며 호탕하게 웃는 소리에 나는 덩달아 움찔움찔 놀란다. 아마도 이러한 그녀들 또한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의를 줄 것이다. 기본 매너에 대하여 가르칠 것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길어지다 여기까지 미치자 우매한 나는 그제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그러했겠구나...

오랜만의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즐거움에 취해 말을 할 때 분명 데시벨 조절을 못 했을 것이다. 대화의 중심에서는 소음처럼 들리지 않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뭐라 하기 전에 나부터 단속해야 한다. 정신 차려야 했다.


'규칙은 규칙이다.'

내가 과연 아이들에게 이 내용에 대하여 지적질할 입장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면에서 바라볼 때 오히려 내가 애고 아이들은 어른답다. 소음에 대하여 말은 시작했으나 따져보면 부족함 많은 것은 꼬맹이들이 아닌 나였다. 적어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대하여 노력하고 도전하고, 고치려고 노력이라도 하니 나은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어른이라고 불리고 있는 나는 고치기는커녕 문제를 문제라고 깨닫지 못하고 살았으니 하수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늘 아침 답답함에 시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각할 수 있다'며 아이의 발걸음을 재촉했던 상황이 오버랩되었다. 즉시 '겸손'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야 했다.


단지 나이라고 부르는 숫자가 많아서 어쩌다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그것을 권력으로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도대체 뭐가 그리 잘나서 그랬을까. 잘난 것도 없으면서 잔소리를 해댔던 스스로에게 속으로 질책했다.


오늘은 각자의 일상에서 퇴근? 하신 어린이 분들에게 잔소리하지 말아야겠다. 단지 서툴러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사실은 내가 더 낮은 레벨이었으니 말이다. 성격상 또 금방 잊어버리고 지적질을 할 수도 있을 테니 메모지에 '나는 아직 어린이다!'를 써서 주방에라도 붙여놓아야겠다.


적어도 세 번 중 한 번은 나도 진짜 어른답게 행동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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