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도 좋고, 바람도 구름도 모두가 평화로운 주말.
아빠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충전하러 가기 바쁘고, 큰 아이는 평일에 못하는 게임을 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우리 두찌.
공주님은 그 모든 것이 다 재미없다.
낮잠 자는 아빠, 게임하는 오빠처럼 손쉬운 방법도 있으련만 아직까지 엄마 껌딱지 신세다.
느긋한 일요일 오후.
나에게 자꾸 뭘 해달라고 한다. 동화책도 읽어주고, 간식도, 엄마랑 그림 그리기 등 체력에 자신 없는 나는 이내 에너지가 고갈된다. 충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따위 사정은 공주님에게 먹힐 리 없겠지. 나도 누워서 영화 한 편을 보다가 스르륵 낮잠 자는 패턴을 갖고 싶었다.
본격적인 따님 공략 시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왜 이리 야무지고 철벽이실까. 살살 구슬리고 싶으나 입구부터 컷 당하는 것이 이 순간 나에게도 잔머리가 필요하다.
거래하자!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그녀가 원하는 일에 대하여 하나씩 양보하며 거래하는 일이다.
엄마는 많이 피곤한 상태니 집 안에서 할 수 있어야 하며 끝나고 누워서 함께 영화 한 편 보자고 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제안을 받아들이며 자신과 숨바꼭질을 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어둠의 서막이 될 줄은 몰랐다.
본디 숨바꼭질은 술래가 찾는 게임이다.
다른 이는 들키지 않게 숨어야 하는 것이고.
하지만 아이는 눈을 감고 숫자를 세라고 하면서 책장 옆 작은 수납통으로 향했다. 그리고 들어가지도 않는 그곳에 그녀의 작은 몸뚱이를 욱여넣는다. 당연하게도 몸은 넣을 수 있어도 동그란 머리는 해결이 안 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제는 그녀에게 전혀 문제로서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두 눈을 감고 고개만 숙이면 되니까 말이다.
자신을 찾으라고 하는 것인지 찾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구나. 나는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바로 찾아버린다. 뒤이어 작은 꼬마의 오열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아... 새로운 고난의 시작이다. 누가 봐도 숨을 곳 없는 작은 집안에서 누가 봐도 숨어있는 거 다 티 나는 숨바꼭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첫째를 키운 경험에서 알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숨바꼭질은... 역시나 같은 곳이다. 이번에는 멀쩡히 눈앞에 두고선 정성을 다해 온 집안을 청소하듯 꼼꼼하게 투어를 하며 찾는다. 다행히 너무 행복해하면서 수납 봉투에서 기어 나온다. 연달아 진행된 스테이지 또한 이와 같은 패턴이 계속되었다.
두 발과 실루엣이 다 보이는 커튼 뒤, 누가 봐도 거기 있는지 알 수 있는 식탁 밑. 잠이 든 커다란 덩치의 아빠 옆... 대체로 몸은 다 가려지지 않으나 얼굴만 가려지만 만사 오케이. 그럼에도 엄마는 절대 한 번에 찾지 못한다. 그래야 그녀가 우승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숨바꼭질인가.
분명 집에서 하고 있으나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 못지않게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첫째 또한 어렸을 적 그 시절에 같은 게임을 즐겨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으니까 어느 정도 웃으며 진행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표정 관리에서도 에너지를 사용해야 된다는 점을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부침이 시간이 흐른 뒤 성장한 아이에게 따듯한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아이는 술래인 엄마가 자신을 잘 찾지 못할까 봐 일부러 이런 곳에 숨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잘 때 아직도 엄마 품에 파고들며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천사다. 지금처럼 함께 놀았다는 기억과 어디에 숨어도 엄마가 찾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모아진 행복을 기반으로 스스로 일어나 세상에 걸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같은 갑자기 어이없는 이 놀이가 다르게 느껴진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 그것이 세상이 정한 부모의 자격일 테다. 하지만 나 또한 하나의 미성숙한 인간으로서 그게 잘 안된다는 함정이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역할이 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세상에 홀로 나아갈 수 있는 어른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 이 또한 굉장히 어려운 미션이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그저 재능의 유무로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잘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물려준 부모의 DNA 영역이라 내 손을 넘어갔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숨바꼭질처럼 극강의 난이도를 이겨내면 분명 우리 집 꼬마 천사는 엄마의 티끌 같은 사랑을 모아서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는 마음이 강한 사람이 되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