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으론 품기가 어려워

by 그냥사탕

우리 집에는 사랑이 무한으로 넘치는 아리따운 공주님 한 분이 계신다.

그녀는 세상에 모든 동물들을 사랑하신다.

또한 과거에 오래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몇 번 보여드렸더니 이후부터 짹짹이들 있는 나무에 가서 한 손을 공손하게 내민다. 그러곤 상냥한 목소리로 한 마디 한다.


"이리 와~ 해치지 않아~"


풍성한 드레스만 입지 않았을 뿐 마음은 이미 디즈니 공주님이다.


이런 그녀가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중 특별히 애정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토끼'.

하얗고 보드라운 털을 보유한 귀요미. 몇 년 전 다 있다는 그곳에서 토끼 인형 하나를 사 주었다. 그 후론 완전한 애착인형을 넘어서 그녀의 온전한 동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한때 아기들을 좋아하는 듯 보여서 물어보았을 때에는 단호하게 자신이 영원한 막내라며 동생은 이 세상에 토끼뿐이라고 선을 그어 버렸다. 이토록 그녀의 토끼 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얼마 전 하원 후 저녁 식사 준비 전 시간이 남아 동화책을 읽어 주겠다고 아이에게 말하였다. 그녀는 너무 행복한 돌고래 소리를 내며 자연 관찰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물론 당연하게도 '토끼'다.

계속 읽는 엄마 입장에서는 같은 책 연달아 여러 번 읽어주는 거 정말로 힘들다. 하나도 재미없고 말이다. 그래서 그간 여러 번 읽었던 내용이기에 아이에게 권유하였다. 그러자 우리 집 공주님은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매달린 채 나에게 항의했다.


"나는 진짜 토끼를 키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너무 속상해요. 그래서 토끼 책을 가져오는 거라고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본인 나이에 맞지 않는 어휘 구사력은 상대적으로 말주변 없는 나를 할 말 없게 만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밀리면 안 되었다. 분위기 보니 여기서 말려들면 분명 토끼 사달라고 떼를 부리기 시작할 테다. 그러면 한 달 뒤에는 우리 집 거실에 작고 하얀 생명체가 엉덩이로 똥똥 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나와 다르다.

성격이 남편을 많이 닮은지라 설득을 하려면 정확한 수치와 팩트가 함께하는 이성이 필요하다. 마침내 두 눈에 책 속 몇 가지의 정보가 들어왔다.


'임신기간 30일, 생후 6개월이 지나면 새끼를 낳을 수 있으며 그 수는 한 번에 4~8마리'


미취학에 아직 한글도 못 뗀 똑 부러지는 소녀다.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집어가며 읽어 주었다. 그리곤 그 앞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초등학생 오빠의 도움을 받았다.


조건 1. 토끼 한 마리는 약 6개월에 한 번씩 새끼를 낳는다.

조건 2. 토끼 한 마리는 한 번에 8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문제. 토끼 한 마리가 할머니가 되면 우리 집에 토끼는 몇 마리가 될까요?


사실 오빠의 도움이라 써 놓고 아들 수학 공부도 한 번에 하려는 엄마의 꼼수였다. 그리고 제대로 먹혔다. 옆에서 우리의 논쟁을 듣던 그는 신나게 적극 도움을 주려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난이도가 적당해야 하기에 임신기간은 제외하고 대략 6개월로 잡았다지.


1일 - 토끼 1마리

6개월 뒤 - 토끼 1마리 + 8마리 = 9마리(아들)

1년 뒤 - 토끼 9마리 + (9마리 ×8) = 81마리(손자)

1년 반 뒤 - 토끼 81마리 + (81 ×8) = 729마리(증손자)


시작은 귀엽고 앙증맞은 토끼 한 마리였으나 벌려놓는 상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1년만 지나면 할머니가 되어 81마리, 1년 6개월이면 자식과 손자, 증손자까지 729마리의 토끼가 우리 집에 있게 된다. 물론 변수야 있겠으나 곱하기를 배우는 아들이 즐겁게 수학을 하고 따님의 폭주 시작을 막는데 목적이 있었으니 부가적인 것들은 괜찮았다.


그러나 결괏값을 마주한 그 순간 아이는 둘째치고 700마리가 넘는 토끼들이 집에서 뛰고, 먹는 모습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졌다. 더욱이 지난 방학 때 시골집에서 보았던 토끼의 똥 무더기가 동시에 떠올랐다. 비록 토끼를 만지던 아가씨께서 답답할까봐 문을 열어 놓았던 계기로 케이지를 탈출해 시골집 뒷산에서 야생토끼가 되어버렸으나 내 기준에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지루해 보이는 이 과정은 공주님에게 효과가 있었다.


더하기조차 발가락까지 동원해도 20까지가 한계인 그녀. 백 이상의 수는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 집에 약 700마리 이상의 토끼는 어렵겠다는 감은 있었다. 끝내 그녀는 토끼를 사달라고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토끼 사랑은 멈추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빈 종이에 수많은 토끼를 그리던 아이는 자신의 토끼 인형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는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하였다.


자라나는 꿈나무의 어여쁜 상상을 이처럼 확실하게 차단시킨 것에 대하여 엄마로서 여전히 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대로 하기에는 아파트라는 공간이 소중한 생명들을 품기에 별로 자연친화적이지 않다. 그러니 어쩌랴. 하루 종일 똥똥 거리는 토끼 엉덩이만 보며 쫓아다니는 것은 못하겠다. 대신 인형일지라도 그녀의 사랑스러운 토끼 동생들 내가 먼저 다가가 예쁘다고 머리 열심히 쓰다듬어 주어야지.


"따님아.

너의 사랑들을 품기에는 엄마가 많이 힘들구나.

그러니 미안해.

너의 사랑만큼 엄마의 그릇이 크지 못함을 이해해 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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