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진 것이 없다

by 그냥사탕

'나는 가진 것이 없다'


언제나 마음 한편에는 이러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눔, 배려라는 단어가 나올 때면 TV나 각종 매체에서 유명인들의 기부 소식이 떠올랐으며 1억 원 이상의 기부를 해야 한다는 '아너소사이어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때문에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의 인품 대결처럼 느끼기도 했다.


나는 사실 가진 것이 없으니까...


어쩌면 단편적인 정보들이 잘못 섞여 이상한 퍼즐이 된 듯 '가지다'의 뜻을 재산 또는 금전에 국한되어 속 좁게 사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등원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 친구의 엄마를 만났다.


대체적으로 등원 시간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 보니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 마주하는 얼굴들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마주치면 때에 따라 바로 집으로 돌진하는 것을 잠시 미뤄두고 즉흥적으로 동네 한 바퀴 함께 도는 그런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러곤 오늘도 운동했다고 홀로 마음 다독이며 셀프 칭찬 인색. 게으름의 정점을 이미 찍었으나 중력과는 아무 관계없이 점점 옆으로 불어나는 살들에게 오늘도 나름의 경고처럼 보이는 위안을 부여해 준다.


같은 나이대의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절로 대화 주제는 한정되어 간다. 그렇게 이야기는 꼬리의 꼬리를 물어가며 최근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도 하다가 김장으로 넘어갔다. 보통 등원 이후에 보이는 얼굴들은 대부분 가정주부인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누구의 딸이자, 누구의 며느리라는 증거.

그렇기에 올해도 다가오는 김장철을 피할 길이 없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장소만 차이가 있을 뿐 다음 한 해를 버틸 수 있는 김치를 얻기 위해서는 나의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야 된다는 공통점으로 의견은 모아진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는 김치의 보릿고개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우리 집 냉장고에는 감사하게도 친정에서 보내주신 김치가 아직 남아있었고, 상대는 똑 떨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약 2주일을 버틸 수 있도록 김치 한 포기를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흔쾌히 긍정의 표현을 했다. 그리고 운동이라 부르는 몸짓을 마무리하며 집으로 초대했다. 당연하게도 온 식구가 집을 나서면서 모닝 폭탄을 곳곳에 터뜨려 놓았던 터라 부끄러움이 먼저였다. 하지만 그 시간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하듯 상대 또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더랬다. 처음에는 멀리서 얼굴 보면 고개 까딱이며 인사하던 사이였는데, 어느새 김치를 나누어 먹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참 좋았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요청 사항은 김치 한 포기였으나 어째 한국 사람이면서 야박하게 그러한담.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배추김치와 열무김치를 집어넣고 혹여나 국물 한 방울이라도 샐까 봐 나름 야무지게 밀봉까지 마무리했다. 빈손으로 와서 미안하다고, 김치 줘서 고맙다고 연신 미안과 고맙다는 말을 하는 상대에게 나는 도리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후 조금 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또 한 번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깔깔거리며 했고 그녀는 내가 챙겨준 김치를 들고 돌아갔다. 그저 수다 떨고 내가 가지고 있던 약간의 김치를 나누어 주었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순간 멈칫했다.


왜지?


그저 상황만 마주했을 때에는 내가 호구처럼 보였다.

보는 사람의 시야에 따라서는 나는 주기만 했을 뿐 얻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받은 것이 있었다.

감사함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


처음부터 대가를 바라고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당연하게 바란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고마워하는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나에게 듬뿍 남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저 호의로 시작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나눔 했을 뿐이었다.


언제나 가진 것 없는 사람이라 여겼었다. 그로 인하여 자존감도 떨어져 가는 기분을 가진 채 살아왔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으면서 반대로 나는 가진 것이 없기에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 단정하며 살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눔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처음부터 '가진 자'라고 선을 그어왔던 대부분이 사실은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어서 감사했고,

그것을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고,

나눔으로 인하여 마음이 풍성하고 행복해졌다.


이제야 내 안에 딱딱하게 굳어있던 편견 하나가 사르르 녹아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 나는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할 수 있었다.

언제인지도 모를 아주 오래전에 정의 내렸던 '가지다'라는 단어가 반드시 금괴처럼 재산에 한정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김치도 있고, 계란도 있고, 비록 오래되었지만 이 글을 쓸 수 있는 노트북도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마음까지 가지고 있는 이제부터 가진 것 많은 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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