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얼굴이 궁금해
결혼 전의 나는 비혼주의자였다. 때문에 당시 남자친구이던 현재의 남편이 꽤 애를 먹었다. 연애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주변에서 먼저 나왔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혼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임신과 출산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인생에는 과업이 왜 이리도 많은지. 결혼이라는 관문을 넘고 나자 주변에서는 임신을 권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인생의 수순인 것처럼. 그 자연스러운 강압에 질려 임신에 강력히 저항하던 나는 ‘호르몬’이라는 더 강한 본능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내 아이의 얼굴이 궁금해진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아름’이라는 태명을 붙여주었다. ‘아름’은 엄마가 40여 년을 일궈온 조그만 의상실의 상호명이다. 시어머님이 남편을 임신했을 때 ‘아름의상실’에서 임부복을 지어 입은 재미있는 역사를, 우리는 상견례 자리에서 알게 되었다.
아주 조그만 아름이는 내 안에서 온갖 행패를 부렸다. 입덧, 역류성 식도염, 환도선다, 까맣게 부풀어오른 유륜, 자다가 악소리나게 쥐가 나는 다리, 배뭉침… 온갖 몸의 변화를 겪으며 내 기분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하루는 안정적이고, 하루는 우울하고. 큰 바람 없이 아이를 가졌기에 초기에는 ‘아이가 잘못되어도 괜찮을 것 같아…’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아이를 임신한 것은 코로나가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2020년. 바깥에서 외식 한 번 하기도 조심스러웠기에 우울감은 더욱 심했다.
아이를 갖고 몸이 힘들다며 징징거리는 나에게 아빠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애기 가지고 낳는 게 쉽고 아무렇지도 않으면 낳고 나서 어리둥절할 것 아니냐. 얘가 내 배에서 나온 게 맞나. 남의 집 애가 아닌가. 남의 집 애는 예쁘지만 내 애는 목숨보다 귀하지. 그게 다 엄마가 임신하고 낳는 과정에서 고생을 많이 하니까 애정의 강도가 또 달라지는 거야. 아주 귀한 일을 해내는 건 어려운 게 당연하지."
그 말이 나에게 깊게 다가왔다. 나는 ‘귀한 일’을 해내고 있구나. 그러느라 이렇게 몸이 힘든 거구나.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좀더 내 몸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리던 2021년 7월 9일, 드디어 나는 그렇게 궁금하던 아름이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