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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Dec 24. 2020

- 2020, + 2021


It was the best of times, it was the worst of times, it was the age of wisdom, it was the age of foolishness, it was the epoch of belief, it was the epoch of incredulity, it was the season of Light, it was the season of Darkness, it was the spring of hope, it was the winter of depair, we had everything before us, we had nothing before us, we were all going direct to Heaven, we were all going direct the other way - ...  Charles Dickens, <A Tale of Two Cities>

2020년의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도입부를 자주 생각했다. 시국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와 사회의 거시적 흐름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개인의 삶이겠지만, 나의 2020년은 시국을 차치하고도 충분히 다사다난했고, 충분히 바닥을 경험했고, 충분히 냉온을 오갔다. 삶의 궤적을 찬찬히 살펴보면 딱히 주목할 만한 사건도 없는 것 같은데 변화무쌍한 굴곡이 있었고 실제로도 제법 다이나믹했다. 이 지분의 일부는 pandemic crisis에, 일부는 회사에, 일부는 나 자신에 있지만 따지고 보면 긴밀한 연쇄 작용을 일으킨 탓에 거대한 교집합 속에 뭉뚱그려진 느낌이다. 사회와 일터가 전염병의 소용돌이를 지나는 동안 나 자신 또한 만만치 않은 홍역을 치렀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한데, 여러가지가 덩달아 숨을 막히게 했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떠나고 사람이 바뀌고 사람이 들어왔다. 코로나로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부서이동을 해서 텅 빈 사무실에 나 혼자 우두커니 근무하는 날들도 다반사였다. 다들 동정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내심 사무실에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 조용한 사무실에 오후의 햇볕이 들면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곤 했다. 어지간한 유형의 사람은 겪었으려니 생각했는데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은 학습될 수 없다는 것만 깨달았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존재했고 나는 아직도 온실 속에 있었다. 그래서 결국 조금 더 낮아지기로 결심했다. 이미 더 이상 낮아질 것이 없을 만큼 엎드려 있지만, 그래도 더 수그리기로 했다. 고수와 하수가 만났을 때 하수가 고수인 척을 해 봤자 처참해질 따름이다. 하수는 하수답게 숙이는 것이 차라리 현명하다. 나는 늘 하수에 속해있다.


타자로 인한 문제와는 별개로- 라고 하기에는, 그 타인들이 도화선이 된 다른 문제들도 산재했다. 타인으로 인한 외부효과는 다른 상황과 맞물려 내면적 발로를 야기했다. 오랫동안 목표라고 생각했던 것을 내려놓아야 했고, 전혀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아야 했다. 가능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 불가능함을 아프게 깨달아야 했고,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던 것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깨우치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빈 벌판에서 헤매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고 있음을 실감하기도 했다.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특성이 장점이 될 수 있음을 인지했고, 장점인 줄로만 알았던 특기가 실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함을 겸허히 인정하게 되기도 했다. 차마 놓지 못하고 있었던 희망이, 사실 희망이 아니라 미련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가치있다고 생각했던 대상이 사실은 그 정도의 가치가 없음을, 세상을 제법 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사실은 아직도 어수룩하기 짝이 없음을 연달아 알게 되면서 속이 상하기도 했다가 속이 편해지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한 해가 끝자락에 이르렀다. 언제부터인가, 연말이 되면 늘 조바심이 났다. 이룬 것도 성과도 없이 한 해가 흘러가는 것이 못내 불안했다. 스스로를 질책하곤 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그 정도로 잘못 살아온 걸까. 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벌을 받는걸까. 해결되지 않는 의문은 이맘때마다 정신을 잠식해서 겨울을 더욱 춥고 길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단순한 죄와 벌의 논리로 세상을 판단하려 하면, 세상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중으로 잔인한 곳이 되고 만다. 개인의 불행이나 시련은 반드시 그가 직접적으로 행한 죄의 댓가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행복으로 가득 찬 삶을 누리는 사람 또한 반드시 그가 어떤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에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겪어 마땅한 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있는 법이다. 부당한 벌을 받는 것 같아 억울하고 괴로울 때 긍정과 희망으로 마음을 다잡는 것. 설령 온당한 행복이라 할지라도, 정점에서 교만하지 않고 고개숙일 줄 아는 것.

내 상황이 나락에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내 인격은 함께 추락하지 않도록 다잡는 것. 누군가의 언행으로 상처를 받고 자존심이 무너질 때, 분노하기보다는 나 또한 무심히 행했던 언행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돌아보는 것. 벌어진 일에 좌절하는 대신 그 일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수반되고, 그래서 어떤 일이 상선벌악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시간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때로는 아주 한참이 지났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 섭리나 의미를 알 수 있기도 하다. 어쩌면 그 섭리나 의미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노력이 만든 산물일 게다.



2020년은 결단코 최고의 해는 아니었다. 최악의 해라고 주장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 그래도 최악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은 - 해였다. 객관적 정황으로 최악인 것과 주관적 감정으로 최악인 것은 다른 문제니까. 분명한 것은 2020년은 모든 것을 비우게 되는 해였다는 것이다. 내가 믿었던 모든 것들이 뒤집히고 변화하고 소멸하고 때로는 생성되기도 하면서 백지 상태에서 시작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지금까지 힘겹게 버티며 쌓아온 것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된 것 같아 허탈한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삶은 갱신되는 것이 아니라 누적되는 것이어서, 결국 지난 일들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살아온 이력에 한 해가 더해지는 것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나이 외의 모든 것들은 뺄셈 뿐이었기에 홀가분하기도 하다.


다시,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는 사람이 있다. 따귀를 올려붙이고 생채기를 내고 소금을 뿌린 듯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덕분에 적시에 정신을 번쩍 차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나에게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자괴감에 빠질 때마다 용케 일으켜 세워주는 계기가 되는 사람들이 존재했음에 감사한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어, 홀홀단신 1부터 시작하는 덧셈을 시작해 보려 한다. 와, 이 나이에 또 처음부터 뭔가를 해야 한다니요. 신이 있다면 투덜대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종래는, 감사했다, 감사하다, 로 마무리짓고 싶다. 감사할 수 없는 순간에도 감사하다 보면, 정말 감사할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감사와 희망과 용기와... 이런 것들을 하나씩 더해 나가다 보면 2021년은 덧셈기호로 가득찬 공식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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