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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ug 01. 2023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믿음

가까운 사이일수록 노력이 필요하다

결혼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하겠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결혼을 유지할 때 중요한 것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없어지면 결혼은 예의도, 긴장도 없는 막장이 되어버릴 수 있다. 이건 같이 살려는 노력을 해 보지도 않고 헤어짐을 먼저 생각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많은 결혼의 파국은 결혼이 관계의 종결이라 믿어 잡힌 고기에 먹이 안 주고, 잡힌 새의 노래를 듣지 않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실은 결혼은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의 시작인데도.


연애는 환상이었어도 결혼은 현실이기에 결혼하면 상대의 실체를 보게 된다. 단순히 민낯이나 후줄근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을 넘어 상대의 가장  밑바닥 모습, 가장 편한 사람에게 나오는 본성을 보게 된다. 가령 밖에서는 사람 좋고 후배들에게 밥 잘 사주는 남편이 부인에게는 지독하게 돈을 아낀다거나, 누가봐도 슈퍼우먼같은 부인이 집에서는 매일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버려 남편에게 잔소리를 듣는다거나. 자기관리 철저해 보였는데 잘 안씻는다거나, 사치가 너무 심하다던가. 하루종일 게임만 한다던가 하루종일 잠만 잔다던가.


이런 단점을 보인다는 것은 첫째, 이미 습관화가 되어 바뀌기 어렵기 때문이고, 둘째, 바꾸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어차피 같이 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셋째를 바꾸면, 그러니까 ‘내가 이걸 노력하지 않으면 헤어질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한다면 앞의 두 가지도 바뀌게 된다. 연애할 때는 짧게나마 필사의 노력을 해서 스스로를 개조시키지 않나. 이런 걸 알면 상대가 헤어질까 노심초사하며. 또 연애할 때는 짧게나마 너그러워지지 않나. 상대의 단점이나 허물을 알아도 감싸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참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단점도 참기 어려워지는데, 하물며 몰랐던 단점은 오죽하랴.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져서 살다 보면 단점은 점점 확대되고 장점은 점점 소멸된다. 이 단점 때문에 이 사람의 가치가 깎여지고, 마침내는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나니까 이 사람이랑 살아준 거지 다른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다고 생각한다. 무슨 업보인가 팔자를 한탄하기에 이른다. 제발 이 결혼을 무르거나 시간을 돌리고 싶어진다. 결혼 전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과 살기를 간절히 바랐으면서.




연애의 종결이 결혼이 되는 비율보다, 결혼의 종결이 이혼이 되는 비율이 더 높아진 시대다. 이혼은 어렵지도 드물지도 않은 일이다. 이혼하고 오히려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우도 흔하다. 이혼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생길 수 있는 일이다. 함께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는 따로 행복하게 사는 편이 피차 좋으니까. 내가 상대방과 함께 살아가며 공동 생활의 기본적인 규칙-상대에게 피해주지 않기, 상대가 싫어하는 일 하지 않기 등-을 지키지 않는 순간 공동의 삶은 파기된다. 어찌보면 같이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다.


그런데 어차피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면, 헤어지기 전에 조금 더 노력해 보는 것은 해볼만한 일이다. 회사에서도 아무 때고 사표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보게 되듯이. 그래서 결혼에서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믿음은 결혼을 유지하는 중요한 열쇠다. 언제든 헤어질 수 있으니 이성으로서의 매력도 유지해야 하고, 상대가 싫어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바뀌기 힘들더라도 바뀌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사생활은 존중해줄 줄도 알아야 한다. 속도도 온도도 다른 사람과 발을 맞춰 걸어가다가 손을 놓는 것은 쉽다.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어려운 일일 뿐. 쉬운 길을 가기 전에 어려운 길을 가 보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우리가 가족이라고 부르는 사람 중에는 배우자가 가장 특별하다. 피 한방울 안 섞인 유일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문에 그 가족관계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기도 하다. 그러니 가족일 때 최선을 다 해야 하고, 가족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남편이라고, 아내라고 살면서 지지고볶고 싸우면서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지 않나. 모르면 물어볼 수도, 대화를 시도할 수도 있지 않나. 연애나 썸은 정답을 몰라 알쏭달쏭하지만 결혼한 배우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좀 더 명확히 알지 않나. 그 답을 아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때로는 더 어려울 때가 있다. 결혼 전에는 그토록 갈구하던 답인데도. 사실 어려울 것은 없다. 답을 아는 질문에는, 그냥 정답을 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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