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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pr 10. 2018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판타지와 현실세계의 어디쯤

연애세포가 소멸하고 사멸한 30대 여자사람의 판타지를 제대로 충족시켜주는 이 드라마. 제목부터 대놓고 간질간질하지 않은가. 나 진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할 자신 있는데 밥 잘 사먹일 귀여운 연하남이 주위에 없다. 어째 남동생이 있는 친구조차 없다. 내 친구들은 여동생이나 오빠만 있기로 담합이라도 한 것인가? 얼굴이 손예진이 아니므로 무효라는 반론은 무시.


여자가 봐도 예쁜데 남자가 보면 어떻겠어.


손예진 언니는 이제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연예인이지만, 연기도 실감나게 잘 하지만, 얼굴에 현실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닌가. 저 반달 눈웃음은 왜 저리 귀여운 것이며 머리를 질끈 묶고 피로에 찌든 채 운동화를 신어도 예쁜 것인가.


가끔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점심시간에 슬립온을 신고 나가 회사 근처를 하염없이 걷곤 한다. 원피스에 캐주얼화를 신은 내 모습은 부조화스럽기만 하다. 혹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고개를 숙인 채 걷는다. 하이힐의 도움을 받지 못한 다리는 자신이 없다. 다크서클을 넘어선 다크 아우라가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것만 같은데. 예진언니 반칙이에요...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사실 이 드라마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연애 이야기 때문이 아니다. 연애의 설레는 감정은 현실에서 느껴본 지 너무 오래라, 드라마에서는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지 공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회사와 가족 이야기다.


어느 회사나 비슷하구나, 그들의 질량은 직종과 조직 규모를 넘어 늘 비등하게 보존되는구나, 하는 안도감과 씁쓸함. 피곤이 내려앉은 채 어깨를 두드리며 퇴근하는 윤진아의 모습에서 자꾸 내가 보인다. 터덜터덜한 발걸음은 얼마나 고된 하루를, 한 주를 보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동료들은 333 법칙으로 존재한다. 조력자 3, 장애물 3, 이도 저도 아닌 3. 손예진의 외모에 대한 감탄은 잠시 내려놓고 윤진아의 고단함에 공감하게 하는 것은 배우의 내공이리라.


등짝 스매싱을 당하는 과년한 미혼 딸로서의 죄책감. 집 밖에서는 싹싹하고 똑부러지다가도 부모님 앞에서는 부루퉁하고 툴툴대는 자식으로 변해버리는 철없음. 부모님의 기대와는 자꾸 어긋나는 내 마음과, 미안함에 더 퉁명스러워지는 말투. 자꾸 노쇠해 가는 부모님의 바람을 조금이나마 충족시켜 드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성과 감성은 늘 불일치한다. 달달한 연애감정도 부모님 앞에서는 죄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들의 연애가 벌써부터 걱정되기도 한다.


물론 다른 것도 있다. 입사한지 십 년이 넘어가는데 우리 팀에서는 여전히 내가 막내다. 귀엽고 풋풋한 (정해인 닮은) 남자 후배가 들어온다면 업고 다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저런 아이는 현실에 부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괜한 흑심을 품어 본다. 유목민처럼 수렵 채집이라도 하고 싶으나 이미 멸종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봉황이나 기린처럼 상상에만 존재하는 생명체거나. 생각해 보니 우리팀 분들, 막내가 저라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우리엄마는 제가 제일 귀엽댔어요...


아이 그렇게 웃지 마. 누나 심쿵한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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